연구원 칼럼

고대 중국의 한류 2

전원철 연구위원

2021.04.02 | 조회 21

전원철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번에는 고구려기와 호선무를 이야기했다. 이제 그 당시 사용된 악기와 복식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구당서》 예악지에 의하면, 고구려의 음악인과 무용수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해 놓았다: 


“고구려음악. 악공들은 새깃으로 꾸민 자색의 비단모자를 쓰고, 큰 소매의 황색 두루마기에 자색 비단띠를 띠고, 넓은 바지에 붉은 가죽신을 신었는데, 오색으로 만들 끈으로 맸다. 무용수 네 명은 머리카락을 뒤로 틀고, 붉은 마래기로 이마에 동이고 금귀고리로 장식했다.


… 음악에 쓰인 악기는 탄쟁(彈箏), 추쟁(搊箏), 와공후(臥箜篌), 입공후(竪箜篌), 비파(琵琶), 의취적(義嘴笛), 생(笙, 대나무 피리), 퉁소(簫), 작은피리(小篳篥), 큰피리(大篳篥), 복사껍질피리(桃皮篳篥), 장고(腰鼓), 제고(齊鼓), 지는북(檐鼓, 첨고), 패(貝) 각각 하나였다. (《舊唐書》권 29, 志 9, 音樂 2)


이 《구당서》의 묘사와 꼭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 그림이 하나 있다. 중공의 길림골 집안현 통구에 있는 고구려 고분 무용총(舞踊塚) 벽화이다. 여기에는 춤추는 고구려인들이 있다.


이 그림 속 맨 첫째 사람은 《구당서》 예악지의 말처럼 “새깃으로 꾸민 자색의 비단모자를 쓰고” 있다. 또 나머지 무용수도 모두 “큰 소매의 황색 두루마기에 자색 비단띠를 띠고, 넓은 바지에 붉은 가죽신을 신었는데, 오색으로 만들 끈으로 맸다”는 모습과 거의 꼭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또 방금 본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7세기초 당나라 십부기의 하나로 파견됐던 고구려의 악공들은 매우 화려한 복장을 했었다. 그들은 방금 본 그 15종의 악기로 편성된 관현악단의 합주활동을 전개했음이 확실하다. 고구려의 무용수 역시 금귀고리를 달았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고구려의 이러한 악공과 무용수들은 본국의 왕립음악기관에서 파견되었다. 이를 볼  때, 본국의 음악문화가 7세기 초에는 절정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춤은 당나라의 멸망 이후 송나라 초까지 고려무(高麗舞)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었다.



고려(高麗), 백제, 신라의 기악무(伎樂舞)는 어떤 때에 주로 연주되었을까?


《수서》를 보면 수나라 황제는 행사 때에는  ‘백희(百戲)’를 놀게 하고 이와 함께 궁중악인 9부기, 10부기 등 음악과 춤을 연주하게 하였다.백희(百戲)는 처음 제나라 무평 중에 시작된 어룡찬만(魚龍爛漫), 배우(俳優), 주유(硃儒), 산거(山車), 거상(巨象), 발정(拔井), 종과(種瓜), 살마(殺馬), 박로(剝驢) 등으로 구성된 놀이이다. 특히 다른 나라 국왕들이나 사신이 모이는 기회에 연주했다:


“매 해 정월 만국(萬國)에서 사신이 조정에 오면 15일을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는 단문(端門) 밖 건국문(建國門) 안에서 8리(綿亙八里)에 걸쳐 희장(戲場)을 만들었다. 백관(百官)이 텐트를 세워 길을 끼고(起棚夾路),어둑할 때부터 새벽까지(從昏達旦)실컷 보았다. 달 말이 되어서 끝났다(至晦而罷).  기인(伎人)은 모두 옷이 비단, 자수로 화려하고(皆衣錦繡繒彩),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其歌舞者) 대개 부인복(婦人服)을 입었다. 


명환(鳴環)을 차고, 화모(花毦)로 꾸민 이가 3만 명 가까이였다. 3년에는 황제가 유림(榆林)에 행차했는데, 돌궐(突厥)의 계민(啟民)이 행궁(行宮)에 조례하러 오자, 제(帝)는 또 이 행사를 벌여 보여주었다. 6년에 여러 외국 이인들(諸夷)이 크게 방물(方物)을 바쳤다. 돌궐(突厥)의 계민(啟民) 이하 모든 국주(國主)가 직접 와서 조하(朝賀)하였다. 그래서 천진가(天津街)에 백희(百戲)를 성하게 차리고,바다 안의 기이한 기예가 있는 자가 모이지 않은 바가 없었다.


… 동도(東都)에는 제왕(齊王) 간(暕)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했는데, 쇠(金), 돌(石), 박(匏), 가죽(革) 소리가 수10리 밖에서도 들렸다. 현(弦)을 치고 관(管)을 부는 자가 1만 팔천이었다. 또  햇불을 줄줄이 걸어 두어 광촉이 천지에 퍼지고 백희가 성하여 예전에 없을 정도였다. 이로부터 매년 하는 것을 관례로 했다.”



돌궐 계민 및 고구려 사신과도 만난 적 있는 수양제 양광



양(梁) 원제(元帝) 소역(萧绎, 508~555년) 때의 코르/아프탈(滑/嚈噠), 페르시아, 백제, 쿠차, 왜, 랑카수카(말레이), 등지강(鄧至羌, 白水羌이라고도 함), 주구파국(朱俱波国, 동투르키스탄), 소그드(曹國, 粟特昭武九姓, 烏什魯薩那公國), 호밀단(胡密, 아프간), 백제, 차말국 사신들


이와 같은 행사의 일환으로 고려기(高麗伎), 고려(高麗) 가곡(歌曲)과 무곡(舞曲),백제기(百濟伎)와 신라기(新羅伎)가 연주되었다.


그 외 노래를 부르면서 꼭두각시 놀음을 하는 것도 있었다. “꼭두각시 놀음(偶人以戲)…은 고려국(高麗國)에도 있었다. …. 쇠(金), 돌(石), 실(絲), 대(竹), 박(匏), 흙(土), 가죽(革), 나무(木)로 이를 8음(八音)이라고 한다. 쇠와 나무소리로 쳐서 악을 이룬다(金木之音,擊而成樂). 이제 동이(東夷)에 관목(管木)으로 하는 악기가 있으나, 도피(桃皮)가 그것이다” 고 한다.


당나라 때 고구려의 악기 15종 중에서 탄쟁, 추쟁, 와공후, 수공후, 비파, 생, 소, 소피리, 패, 요고, 제고, 담고 이상 12종이 서량기(西凉伎)의 악기와 같다. 오직 대피리, 도피피리, 의취적만이 다를 뿐이다. 서량기가 황하 상류의 하서(河西)지방의 음악문화이므로, 고구려 악기가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량악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고구려 악기 중에서 비파, 공후, 적, 피리 등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구자악, 소륵악, 안국악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므로, 서역 악기와도 역사적으로 관련되었다.


- 3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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