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

시베리아 초원의 아르카임 유적지

김현일 연구위원

2021.03.02 | 조회 135

시베리아 초원의 아르카임 유적지

 

 

# 본고는 상생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올렉산드로 이슈추크 박사가 본 연구소에 보내온 논문을 바탕으로 필자가 작성한 글이다. 이슈추크 박사는 우크라이나 고고학자로서 상생문화연구소 초청으로 우크라이나 고대사와 그 역사유물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으며 최근에는 스카타이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논문들과 아르카임 유적지에 대한 논문들을 본 연구소에 보내주었다.

 

1987년 시베리아의 첼리아빈스크 주의 볼샤야 카라캉가 강 댐 건설을 위한 사전 유물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아르카임 유적지는 남부 우랄 초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행정상으로는 러시아의 첼리아빈스크 주에 속한다. 남쪽의 카자흐스탄 국경과 가까운 곳이다. 아르카임은 투르크 방언으로 능선이라는 뜻이라 한다.

아르카임 항공사진 (1956)

 

수년간에 걸친 발굴 작업을 통해 이 유적지가 청동기 시대에 속한 집단거주지 즉 촌락이었음이 밝혀졌다. 연대는 BCE 2천년 경으로 한국의 단군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지이다. 아르카임 유적지는 청동기 시대 말에 주민들이 떠난 이후로 큰 자연재앙을 겪지 않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주민들에 의해 정착 및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내려왔기 때문에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될 수 있었다.

유적지의 면적은 사진에서 보듯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면적은 약 2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아르카임 유적지의 특징이 요새화된 촌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내성과 외성을 갖춘 촌락이었다. 성벽은 나뭇가지를 심으로 하여 흙으로 쌓았는데 외부성벽의 직경은 160미터, 성벽의 두께는 4-5미터, 높이는 5.5미터, 해자의 깊이는 2미터이다. 문은 모두 네 곳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성벽 안으로 열을 지어 배치된 집들의 넓이는 110-180 평방미터 정도였다. 우리 평수로는 40-60평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당히 널찍한 집이라 하겠다. 촌락의 중심에는 광장이 있었고 광장을 둘러싼 집들은 27, 내성 바깥에 위치한 주거는 모두 39개였다. 집집마다 우물과 화로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대략 1,500-2,500 명이 이곳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적이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건축이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발굴작업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진 아르카임 모형도

 

당시 러시아 초원지대에는 청동기가 널리 전파되어 있었는데 아르카임 인들은 청동기를 주조하였다. 지질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주변에서 구리를 채굴할 수 있는 고대 구리광산을 십여 곳 발견하였다. 아르카임 인들은 용광로에서 광석을 녹일 수 있는 1,300-1,400도의 높은 온도를 내기 위해 수차를 이용하였다. 즉 흐르는 물로 물레방아를 돌려 풀무를 가동하여 강력한 바람을 용광로에 불어넣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