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속의 철학

너 자신을 알라

유철

2013.06.17 | 조회 5559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143.5.21. 서양철학부 유 철


소크라테스는 예수 공자 석가와 함께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聖人중의 한사람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네 사람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예수가 약간 늦긴 했지만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였고, 모두 남자이며, 돈벌이에는 별로 소질이나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결정적인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그들 모두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천이지 결코 이론이 아니었다. 예수가 주장한 사랑과 용서, 석가의 자비, 공자의 인仁 등은 모두 인간이 행해야 할 실천적 개념들이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일생동안 찾아 헤맨 것도 행위의 절대적 기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러한 윤리적 문제를 행동을 통해 직접 스스로 보여주려고 했다. 그들이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목숨을 건 실천이야말로 그들의 이름이 빛나게 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들이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나 과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소위 성인의 반열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치제도란 있을 수 없으며, 과학에 있어 절대적 진리란 없기 때문이다.

기원전 339년, 71세에 독약을 마시고 평소에 주장하던 ‘영혼의 나라’로 돌아간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그에게서 튀어나온 눈과 작은 키, 그리고 들창코에 대머리를 연상하게 되지만 그러한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악녀로 유명한 아내를 사랑한 애처가 였으며, 2박3일을 한자리에서 사색을 할 정도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겨울에도 맨발에 얇은 외투를 걸쳤을 뿐이며, 말술에도 취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사형장에서 독배를 마실 때 그의 아내가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다는데 이는 그의 탁월한 건강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사실 소크라테스만큼 그의 아내 이름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악처로 기록된 크산티페와 한평생(소크라테스가 50세에 결혼하였으니 사실은 20년)을 살았다는 것은 그의 인내심이 신적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친구들이 그에게 ‘자네같이 똑똑한 친구가 왜 크산티페 같은 악처와 사는가’ 라고 물었을 때, “크산티페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여자와도 결혼생활을 원만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 그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담장 밑에서 동네청년과 철학적 담론을 즐기고 있을 때 크산티페는 담장 너머로 구정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4대 성인 중 나머지는 다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지만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예외다. 그는 당시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여전히 위대한 철학자로, 사상가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세 사람에 비해서 소크라테스의 레테르는 조금 딸린다. 아니 오히려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예수를 기록한 『성경』은 세계 최대 베스트셀러이며, 불교의 경전이나 유교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며 우리 문화의 한 틀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다. 그는 철학자라는 돈 안되는 직업을 가진(실제 직업은 좋게 말해서 조각가이고, 사실대로 말하면 석공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평민이었다. 아테네에서 열리는 모든 술자리에 기어코 참석하였으며, 매춘부와 잠자리도 거절하지 않았다. 시장이나 골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는 언제나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너 자신을 알라” 라는 한마디를 통해서이다. 그래도 이 말 한마디 때문에 4대성인으로서 소크라테스는 겨우 체면을 살리게 되었다. 사실 할아버지의 유언은 몰라도 이 말은 누구나 알며, 영어시간만 되면 눈이 감기는 시절에도 “Know yourself"는 유창하게 발음하였다. 또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이 말을 인용하기까지 하였다. 필자도 어릴 때 종종 인용하였는데 그 때는 “니 꼬라지를 알라”는 말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역시 성인의 말은 세월이 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말의 의미는 소크라테스가 전하려고 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 원래 뜻을 모르고 단지 그 문장의 의미만을 이해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보통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처음 만들어낸 말이 아니고 당시 델포이 아폴론신전 현관기둥에 씌어져 있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의 정치인이나 문학가, 법률가 등 지식인들을 향해 “너 자신을 알라”라고 겁 없이 외쳐대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무모한 짓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곧 그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국가에서 인정한 신을 섬기지 않았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고, 재판 결과 독미나리즙 한 사발을 받게 되었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갖기에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게 되었는가?



당시 그리스에서 활동하던 지식인들을 소피스트(sophist)라고 부른다. 물론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 중의 한사람일 것이다. 실재로 그는 소피스트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소피스트들과는 구별되는 특이한 사상을 가진 자였고 그래서 소피스트가 아닌 철학자로 분류되었다. 그가 소피스트들과 구별되는 것은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주장하지 않고 절대적인 진리를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진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델피Delphi 신탁의 예언을 들었다. 카이레폰이 델피 신전에 가서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자가 있는가’ 라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진리탐험은 여기서 시작된다. 진리를 찾아 헤매는 자신이 가장 현명한 자라는 신탁의 대답은 그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본 검객 미야모토무사시(宮本武將)가 자신보다 고수를 찾아 일본열도를 헤맨 것처럼, 자신보다 더 현명한 자를 찾기 위해 아테네의 일류 지식인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이 자신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면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대답이 오류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당시 지식인들에게 던진 질문은 “용기勇氣란 무엇인가?”,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선善이란 무엇인가?” 등등의 윤리적 개념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이 그것을 안다면 그들은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자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신에 대한 불경죄로 고발되었기 때문에 ‘경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문 : 경건이란 무엇인가?

답 : 잘못한 사람을 고발하는 것이다.

문 :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경건한 행동들 중 한 두 가지를 말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경건한 행동들을 경건하게 만들어 주는 경건성의 이데아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답 : 신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경건한 행동이다.

문 : 신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한 신에게 기쁜 것이 다른 신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답 : 모든 신이 사랑하는 것이 경건이며, 모든 신이 싫어하는 것이 불경이다.

문 : 신들은 어떠한 행동이 경건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신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 행동은 경건한가?

답 : 경건은 신들에게 바쳐야할 정성과 관계가 있다.

문 : 어떠한 종류의 정성이 신에게 바쳐져야 하는가?

답 : 소크라테스 난 지금 바쁜 일이 있어서 그만...



이쯤 되면 바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을 변증술, 대화법, 산파술 등으로 부른다. 질문에 대답을 하였으나 소크라테스는 그 대답이 정답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다시 대답을 하도록 계속 유도한다. 상대방은 자신이 아는 대로 대답하였지만 사실은 그의 대답은 소크라테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소크라테스가 듣고자 한 것은 용기나 경건, 선 등의 윤리적 개념이 적용되는 갖가지 구체적 행동의 사례가 아니라 그 개념 본래의 의미였다. 경건한 행위가 아니라 ‘경건 그 자체’, 즉 모든 경건한 행위를 경건한 행위라고 생각하게 하는 절대적 기준으로서의 ‘경건성’(이를 우리는 경건의 ‘정의定義’라고 부른다), 즉 영원불변하는 경건의 이데아에 대해서 알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 당시 지식인들과의 문답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장 현명한 자인 이유를 깨닫게 된다. 당시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그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진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전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으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에 불과했다. 물론 소크라테스 자신도 진리를 알고 있지는 못했다. 단지 그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는 자였다. 왜냐하면 진리를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진리를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역설이 드러난다. 즉 자신은 자신이 진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면 당시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으므로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그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무지(無知)를 자각하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한 그는 진리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 때(無知의 知), 그는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무지의 자각은 단순히 인식의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 더욱 중요하다.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무지로 인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 행동의 진정한 가치를 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신발 만드는 법을 알 때 그는 좋은 신발을 실제로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이, 용기가 무엇인지 알 때 그는 용기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善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는 선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지는 곧 악덕惡德이다.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절대적 진리에 접근하는 것은 바로 올바른 행위를 하는 것, 즉 윤리적 인간이 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진리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그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 의미가 바로 진리였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를 앎으로써 그에 따른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 철학이 갖는 위대성이다. 보통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한마디로 주지주의(主知主義),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서 소피스트의 변명을 들어보자. 당시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받은 소피스트들로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진리란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소피스트의 대표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인간이 바로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다. 즉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는 진리의 기준이 서로 달랐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자신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무식한 인간으로 낮추어 보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여름에도 내가 춥다면 추운 것인데 그걸 거짓이라고 몰아세우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를 그냥 두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멜레토스Meletos에 의해 고발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아니 그는 자유인이 되어 영혼의 고향으로 되돌아갔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에게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었으니까.

플라톤이 스승의 재판을 지켜보고 쓴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마지막 구절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변론을 끝맺는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중에 어느 편이 더욱 좋은 일을 만날는지, 그건 신밖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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