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속의 철학

금주의 한자 5회 脣亡齒寒순망치한

이재석

2016.04.06 | 조회 3581

금주의 한자05

 

 

脣亡齒寒순망치

 

  금주의 한자 ‘脣亡齒寒순망치한’에서

  ‘脣순’은 ‘입술’을 뜻하며, ‘입술과 이’를 ‘이 치齒’자를 써서 ‘脣齒순치’라고 한다. 후에 ‘입구口부’의 ‘순’자를 쓰기도 하나 양자는 형체만 다를 뿐 자음과 의미는 똑같은 이체자 관계이다.

  ‘亡망’은 ‘잃다’는 뜻으로서, ‘나라를 잃는 것’을 ‘나라 국國’자를 써서 ‘亡國망국’이라 하고, ‘망해서 없어지는 것’을 ‘멸망할 멸滅’자를 써서 ‘滅亡멸망’이라 한다.

  ‘齒치’는 ‘이’를 뜻한다. 갑골문을 보면, 원래는 입속의 이를 본뜬 상형문자였는데, 전국시대에 소리를 나타내는 성부 ‘止지’자가 추가되어 형성문자로 변했다. 보통 ‘이’를 ‘齒牙치아’라고 표현하는데, 원래 ‘齒치’는 ‘앞니’를 가리키고, ‘牙아’는 ‘어금니’를 가리키지만 나중에는 구별 없이 쓰게 되었다.

  ‘寒한’은 ‘차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시리다’로 번역한다. ‘추위와 더위’를 ‘더울 서暑’자를 써서 ‘寒暑한서’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순망치한’은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이다.

  이 성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5년〉조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는 공자가 노魯나라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 242년간의 노나라 역사를 기록하면서 선악善惡을 논하고 명분과 대의를 밝혀서 후세에 존왕尊王의 길을 가르친 책이다. 이 책은《시경》, 《서경》, 《주역》, 《예기》와 함께 오경五經의 하나로서,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춘추》를 해설한 책으로는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 공양고公羊高의 《춘추공양전》, 곡량적穀梁赤의 《춘추곡량전》 등이 정평이 있는데, 이를 ‘춘추삼전春秋三傳’이라 한다. 즉 《춘추좌씨전》은 좌구명이란 사람이 이 《춘추》를 해석한 책으로 인물묘사가 정확하여 사학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나 고문古文의 모범이 되는 책이다.

  순망치한에 얽힌 이야기는 기원전 658년경 춘추시대에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중국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다.

  흔히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두 시대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춘추시대는 주 왕조가 동쪽으로 천도한 동주시대 전기, 즉 기원전 770년부터 약 삼백년 동안인 기원전 476년까지를 말하고, 전국 시대는 춘추시대 후 기원전 476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약 250년간 지속된 시기를 말한다. ‘춘추春秋’라는 명칭은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에서 유래하였고, ‘전국戰國’이라는 명칭은 당시의 여러 나라 사료를 편집하여 완성한 《전국책》에서 유래하였다.

  이 시기동안 중국에서는 중원대륙의 패권을 잡기위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었다.

춘추시대에는 무력으로 천하의 패권을 잡은 다섯 명의 패자가 있었는데 이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부른다. 춘추오패는 일반적으로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 초楚나라의 장왕莊王, 오왕吳王 합려闔閭,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말한다, 이들은 제후이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무력으로 제패하여 천하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본 고사는 기원전 658년에서 기원전 655년 사이에, 중국 춘추시대에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제나라 환공은 중원에서 패권을 잡고 있었고, 초나라 성왕(成王)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었다. 이때 진晉나라의 문공도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지형조건이 나빠 산과 강에 의해 길이 막혀 있었다. 진나라 남쪽 중조산中條山 아래는 우虞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고, 이 우나라 남쪽의 황하가에는 괵虢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니다. 진나라가 만약 우와 괵을 복속시킨 후에 그곳에 거점을 두고 중원에 진출하면 공격하기도 수월하고, 지키기도 쉬웠다. 그러나 우와 괵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지세가 워낙 험한데다 길이 좁고 강폭이 넓어서 쉽게 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진나라는 어떻게 했을까?

   진나라는 괵나라와 우나라를 함께 칠 목적으로 먼저 괵나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진나라 군사가 괵나라로 가려면 반드시 우나라를 거쳐야만 했는데, 만일 우나라가 출병을 해서 저지하거나 심지어 괵나라와 연합해서 진나라에 대항한다면 진나라의 목적은 달성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대신들과 상의한 진나라의 헌공獻公은 대부 순식荀息의 계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순식의 계책은 다음과 같았다.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 네 필과 세상에서 가장 값나가는 옥 한 쌍을 우나라에 선물로 보내서 진나라가 괵나라를 공격하는데 길을 빌려 줄 것을 요청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계책은 성공했다.

  기원전 658년, 우나라 왕은 이 두 가지 보물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진나라 사자의 부탁, 즉 진나라 군사가 괵나라를 칠 수 있도록 길을 빌려달라는 청을 냉큼 받아들였다. 우나라에도 현인이 있어 대부 궁지기宮之奇가 진나라의 흉계를 알아차리고 절대로 길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고 간언했지만 국왕은 들어주지 않았다.

  3년이 지난 뒤 진나라가 다시 길을 빌리러 오자 궁지기는 또 왕에게 간언을 했다.

  “우와 괵은 모두 작은 나라이며 서로 이웃하고 있으면서 입술과 이의 관계로 서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강자가 약자를 능멸하는 세상에 서로 의지해야지, 그렇지 않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의 처지도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식견이 좁은 우나라 왕은 간언을 듣지 않고 마침내 진나라 군사에게 길을 빌려주었고 그 결과 괵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괵나라를 병탄한 진나라는 군사를 돌려서 우나라에 머물다가 기회를 틈타 우나라를 습격하여 우나라도 멸망시켰다.

  이것이 바로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망시킨다’는 ‘假道滅虢가도멸괵’의 고사이다. ‘빌릴 가假’, ‘길 도道’, ‘멸망할 멸滅’, ‘나라이름 괵虢’자를 쓴다. 또 순망치한에 얽힌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순망치한은 서로 의존하며, 이해가 상관됨을 비유하는데 쓰인다.

  비슷한 말로 ‘망(亡)’자 대신에 ‘다할 갈竭’자를 쓴 ‘脣竭齒寒순갈치한’을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 ‘竭갈’은 ‘亡망’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 ‘들 게揭’자를 써서 ‘脣揭齒寒순게치한’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입술을 들추면 이가 시리다’는 의미가 된다.

  우나라와 괵나라는 망한지 이미 2천6백여 년이 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망치한’의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까지 줄곧 이어 내려오고 있다. 우나라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괵 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했더라면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는 다시 쓰여 졌을 것이다.

  1956년에서 1957년 사이에 하남성 삼문협三門峽 상촌령上村嶺 일대에서 괵 나라의 묘지가 발견됐는데, 여기서 대규모의 문물이 출토되었다. 드러난 역사의 폐허는 다시금 우리에게 ‘순망치한’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단어】

脣(순): 입술. /月(육달월)부, 총11획, chún/

亡(망): 잃다. /亠(돼지해머리)부, 총3획, wáng/

齒(치): 이. 치아. /齒(이치)부, 총15획, chǐ/

寒(한): 차다. 춥다. /宀(갓머리)부, 총12획, hán/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5년〉

虞師晉師滅夏陽, 非國而曰滅, 重夏陽也, 虞無師, 其曰師, 何也, 以其先晉, 不可以不言師也. 其先晉, 何也, 爲主乎滅夏陽也, 夏陽者, 虞虢之塞邑也, 滅夏陽而虞虢擧矣, 虞之爲主乎滅夏陽, 何也, 晉獻公欲伐虢, 荀息曰, 君何不以屈産之乘, 垂棘之璧, 而借道乎虞也. 公曰, 此晉國之寶也, 如受吾幣而不借吾道, 則如之何, 荀息曰, 此小國之所以事大國也. 彼不借吾道, 必不敢受吾幣, 如受吾幣而借吾道, 則是我取之中府, 而藏之外府, 取之中廏, 而置之外廏也, 公曰, 宮之奇存焉, 必不使受之也, 荀息曰, 宮之奇之爲人也, 達心而懦, 又少長於君, 達心則其言略, 懦則不能彊諫, 少長於君, 則君輕之, 且夫玩好在耳目之前, 而患在一國之後, 此中知以上, 乃能慮之, 臣料虞君, 中知以下也, 公遂借道而伐虢, 宮之奇諫曰, 晉國之使者, 其辭卑, 而幣重, 必不便於虞, 虞公弗聽, 遂受其幣而借之道, 宮之奇諫曰, 語曰, 脣亡則齒寒, 其斯之謂與. 挈其妻子以奔曹, 獻公亡虢, 五年而後擧虞, 荀息牽馬操璧而前曰, 璧則猶是也, 而馬齒加長矣.

 

 

글쓴이: 이재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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