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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산책 3. 스키타이 왕국의 흥망성쇠
스키타이 왕국의 흥망성쇠 김현일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고대의 유목민하면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흉노와 스키타이이다. 흉노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흉노전〉이라는 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한나라 때 중요한 역할을 한 북방유목민이었다. 흉노가 중국사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직후였다. BC...
2020.02.12,
작성일:2020. 2.12., 조회수:1573
[역사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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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산책 2. 동서문명교류의 문을 연 알렉산더대왕
동서문명교류의 문을 연 알렉산더 대왕 김현일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알렉산더가 부왕 필립포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이 된 것은 그가 20세 되던 BCE 336년이었다. 이 젊은 왕자는 왕좌에 오르자마자 부왕이 계획하던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게 되...
2020.02.07,
작성자:김현일 연구위원, 작성일:2020. 2. 7., 조회수:1572
[역사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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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산책 1. 알렉산더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 김현일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알렉산더 대왕(BCE 356-323)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여러 사람들이 전기를 써는데 그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으로는 1세기에 로마인 퀸투스 쿠르티우스(Quintus Curtius Rufus)가 쓴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 2세기에 그리스의 유명 역사가 ...
2020.02.07,
작성자: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를 통일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여 최초로 동서양을 한 국가 아래 통일한 인물이다. 그의 스승이 바로 서양 철학의 비조인 아리스토텔레스였다. , 작성일:2020. 2.7., 조회수:1921
[역사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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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위서론 비판 1회 |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1911년 운초 계연수에 간행된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축적되었다. 역사서로서 『환단고기』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전개되었지만, 『환단고기』 자체에 대한 서지학적 측면의 논의도 진행되었다. 문제는 『환단고기』의 위서논쟁이다. 이 논쟁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2020.01.13,
작성자:노종상 연구위원, 작성일:2020.01.13., 조회수:1515
[역사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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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근본사상 13회 | 보은, 해원, 상생
◈증산도의 근본사상 13회증산도의 근본사상 4) 보은, 해원, 상생 해원과 보은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설명은 《도전》의 다음 구절을 토대로 하여 설명의 기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선천의 모든 악업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천하의 병을 빚어내어 괴질이 되느니라.(7:38:2) 저들이 원...
2020.01.13,
작성자:유철 연구위원, 작성일:2020.01.13., 조회수:1483
[증산도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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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근본사상(12회) 원시반본과 보은
◈증산도의 근본사상 12회 3) 원시반본과 보은 천지가 인간을 낳은 그 원래적 관계로 ‘되돌아감’은 바로 천지의 은혜에 대한 보은의 출발이다. 즉 보은의 궁극적 방법과 실천은 천지와 인간의 관계, 만물의 생명성의 근원인 천지에 대한 모든 생명존재의 관계, 그 관계의 원초성을 회복하는데서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원시반본原始...
2019.12.26,
작성자:유철 박사, 작성일:2019.12.26;., 조회수:1345
[증산도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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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근본사상 제11회 피은(被恩), 지은(知恩), 보은(報恩)에 대
◈증산도의 근본사상 제11회 2) 피은(被恩), 지은(知恩), 보은(報恩)에 대한 우주론적 이해원시반본의 실천이념인 해원과 상생도 상호 주고 받음의 관계이지만 보은의 ‘주고-받음’의 관계는 이와 다르다. 엄밀히 보면 해원과 상생은 오히려 보은과 반대의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해원이나 상생은 상대방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라면, 보은은 이와 달리 받은...
2019.10.10,
작성자:유철 연구위원, 작성일:2019.10.10., 조회수:1344
[증산도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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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이야기 60회 타타르 인
■유목민 이야기 60회 타타르 인 러시아는 크림 한국을 병합한 후 타타르 인들을 러시아에 통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무엇보다도 타타르 귀족(미르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원칙적으로 러시아 귀족(러시아어로 ‘드보리안스트보’라고 한다)과 대등한 존재로 만들려고 하였다.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대제 이후 귀족은 군대나 관직에 복무할 의무가 ...
2019.04.19,
작성자:김현일 연구위원, 작성일:2019.04.19., 조회수:1789
[역사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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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이야기 59회크림 한국의 합병
□유목민 이야기 59회 크림 한국의 합병 러시아의 돌고루키 장군의 군대가 크림 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페레코프 요새를 점령한 것은 1771년 6월 25일이었다. 요새는 900 명 가까운 병력이 지키고 있었는데 러시아 군의 공격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였다. 후방에 있던 3만 5천에 달하는 타타르와 오스만 군대는 혼란 속에서 반도 남쪽으...
2019.04.12,
작성자:김현일 연구위원, 작성일:2019.04.12., 조회수:1690
[역사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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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이야기 58회 토트 남작
□유목민 이야기 58회 토트 남작 18세기 후반 크림 한국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은 서양인이 있다. 프랑스 귀족인 프랑수아 드 토트(1733-1793)이다. 프랑수아 토트의 부친은 헝가리 출신이었는데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오스만 제국에 망명하였다가 프랑스로 귀화하였다. 16세기 이후 프랑스는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동맹국이었다. 이러한 사정이...
2019.03.29,
작성자:김현일 연구위원, 작성일:2019.2.29., 조회수:1542
[역사와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