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증산도의 근본사상(12회) 원시반본과 보은

유철 박사

2019.12.26 | 조회 5550

증산도의 근본사상 12

 

3) 원시반본과 보은

 

천지가 인간을 낳은 그 원래적 관계로 되돌아감은 바로 천지의 은혜에 대한 보은의 출발이다. 즉 보은의 궁극적 방법과 실천은 천지와 인간의 관계, 만물의 생명성의 근원인 천지에 대한 모든 생명존재의 관계, 그 관계의 원초성을 회복하는데서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원시반본原始返本과 보은은 상호 연관적 관점에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보은은 곧 천지가 만물을 낳은 최초의 상태를 되돌아봄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요구되는 설명은 원시반본의 실천이념으로서의 보은에 대한 규정이다. 즉 후천개벽의 절대정신으로서의 원시반본의 실천적 측면을 보은, 해원, 상생으로 볼 때, 그 중에서 보은이 갖는 의미를 집중해서 살펴볼 것이다. 또한 보은과 해원, 보은과 상생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원시반본, 보은, 해원, 상생의 관계정립을 구상해볼 것이다. 이는 보은이 갖는 원리적 특성을 찾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보은 사상의 중요성은 동양의 우주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서양의 시간관과 우주관이 직선적이라면 동양의 시간관이나 우주관은 순환적이다. 서양의 전통적 신관이나 철학적 사고와 이를 바탕으로 한 현대철학의 흐름에서 드러나는 과정철학적 진보, 변증법적 진화, 혹은 창조적 발전 등의 개념, 그리고 현대과학의 도구주의, 진보주의 등은 궁극적으로 직선적 시간관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노자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란 표현이나 인도사상, 그리고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 등의 개념은 우주만물과 인간문명이 직선적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순환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우주의 순환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증산도의 원시반본사상과 일치한다. 서양과 동양의 이러한 사상적 차이는 은혜와 그 갚음인 보은에 대한 상호 대립된 견해를 보여주는 듯하다. 서양의 과학과 문명은 감각주의에 근거하여 욕망과 욕구충족의 당위성을 강조한다면, 동양의 전통적 사유는 욕망의 절제와 관련된다. 또한 시간의 직선적 과정에서 볼 때 만물은 흘러가면 그만이지만, 순환적 시간관에서 현재는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미래로 인식된다. 당연히 은혜는 단지 주거나 받는 일방적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다시 받게 되거나 주게 되는 상호 호혜적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동양적 시간관은 주고받음의 당위성을 이해하는 근본적 토대이다.

이렇게 본다면 원시반본의 궁극적 의미는 보은사상의 토대가 된다. 원시반본이란 시원을 살핌으로써 근본으로 되돌아감이다. 풀어서 말하면 우주생명이 처음의 근본위치, 상태, 입장, 본원적 의미, 절대적 가치 등을 성찰하여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시반본은 우주의 운동패턴이면서 인간 삶의 궁극적 방향이며, 모든 실천적 가치의 규범이 된다. 보은의 궁극적이면서 최종의 실천은 우주생명이 자신의 존재근거인 무극대도에로 원시반본 하여 천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즉 우주생명이 유기적 통일성의 상태로 귀속함으로써 자신을 생성, 화육시켜준, 그러므로 자기의 존재근거인 천지부모에 화답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결국 천지와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천지는 인간의 부모가 그런 것처럼 우주생명을 생성시키고 화육시켜서 생명의 창조적 열매를 맺게 한다. 원시반본은 바로 그러한 천지의 은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보은의 방편이 된다. 다르게 표현해서 천지의 은혜를 인식하는 것과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 즉 보은사상은 그 자체 천지가 만물을 낳은 그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는 원시반본의 한 방안이다. 우리는 보은의 궁극적 의미, 천지보은의 우주론적 의미에서 원시반본의 실현을 확인하게 된다. 후천개벽 하는 이때는 바로 원시반본 하는 때이며, 모든 것이 그 근본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천지의 질서가 바로 잡히는 때이다. 이러한 원시반본 하는 우주의 변화에 따라서 보은의 당위성, 필연성이 드러난다. 천지의 시원을 되살펴 그 근본으로 되돌아감은 바로 보은 그 자체이다.

보은은 단순히 인간이 천지의 은혜를 갚는 차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생성화육의 공덕에 화답하여 그 천지의 대업을 완결 짓는 것을 뜻한다. 증산은 지금은 원시반본 하는 때(7:17:3)이며, 그래서 동시에 이때는 천지가 성공하는 시대(2:43:4)라고 하였다. 우주생명이 상호 유기적 연관관계를 가지고 무극의 통일적 조화를 실현하여 원시반본 하는 것은, 곧 자신의 생명을 낳고 길러준 천지의 공덕에 대한 보답이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신을 살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주생명의 근원인 천지부모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주생명이 자신의 본래성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천지부모와 원초적 관계를 정립하는 것에서 우리는 보은의 본래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증산은 원시반본 하는 우주의 운동 원리에서 보은의 궁극적 의미를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은혜에 대한 보답은 우주의 이치에 따른 삶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한 말이다. 굳이 증산이 배은망덕은 만사신이라고 극단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바로 보은이 갖는 우주적 의미로 인해서이다. 천지자연이 뭇 생명을 낳아 길러준 것에 대한 은혜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 현대의 생태윤리와 생명윤리, 및 환경윤리가 자연에 대한 파괴를 반성하고 새로운 윤리적 관계로 자연과 인간의 은혜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천지성공시대의 당위적 결론이다. 근본으로 돌아가 자연의 본성에 합치하고, 자연의 낳고 기름의 은혜를 인식하고, 다시 그 자연의 개벽으로 새 하늘, 새 땅의 열림에 감사하는 것은 원시반본에 내포된 보은의 실천적 의미이다.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2:23:3)라는 증산의 말은 바로 이를 의미한다. 천지에 보은함은 인간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인식과 천지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적극적 삶의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러한 보은은 천지이치와 그 이치 속에서 가능해지는 해원과 상생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천지 음양의 이치를 깨달을 때 천지보은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지가 인간의 생명을 낳아주고 다시 그 생명을 추수하는 원리와 이치를 알지 못하면, 살림의 방식과 그 살림의 근거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보은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은혜에 대한 인식에서 보은의 실천이 나온다. 천지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보은과 그 보은을 완성하는 해원, 상생은 모두 마음의 개벽을 통해서 그 실천적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에 나아가나니”(4:95:11) 이런 경지에서만이 증산도의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며, 그 신인간의 실천원리인 보은, 해원, 상생이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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