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

철학에세이 16 기억하고 감사하며 (3) 중용에서 사유하게 하는 것

황경선 연구위원

2020.11.23 | 조회 205

기억하고 감사하며

 

3. 중용中庸에서 사유[愼獨]하게 하는 것

 

우리는 앞 1회에서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용中庸에서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에 견줄 만한 것으로서 신독을 언급한 바 있다. ‘사유하게 하는 것을 다루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중용에서 신독을 요구하는 중을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함께 신독의 의미도 더욱 풍부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관점으로써 말하면 중용의 중은 사유하게 하는 것에 해당한다.

1. ????중용????에서 중은 천하의 대본大本으로서 규정된다[中也者天下之大本也]. 이로써 중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속하면서 그들이 각기 그 자체로서 존재하도록 하는 존재의 자리를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중은 존재자들이 다른 것이 아닌 저의 마땅함으로, 예컨대 소는 소로서 말은 말로서 복숭아나무는 복숭아나무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各得其意].

2. 1의 규정은 중이 하나이면서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자의 형태[]가 말해주듯, 중은 모든 것[]을 하나[]로 꿰뚫는다. 모든 것은 하나의 중 안에 있고 중은 모든 것 안에 있다.

3. 그리고 다시 2의 규정은 중은 실체적으로 확정돼 고정된 자리를 점하는 어떤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하나이면서 모든 것이려면, 유이면서 동시에 무인 허령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주자가 말하듯 중은 때에 따라 머물 수 있다[隨時而在]. 또 바꿔 말하면 때에 따라 있는 중은 일정한 체가 아니어야 한다.

4. 중은 그와 같이 존재자에게 끊임없이 존재를 부여하는 천지 만물 생화生化의 근본이다. 중은 그 내용에서 진실무망眞實無妄한 정성[]이다.

5. “음양불측지위신陰陽不測之謂神(주역周易)이라고 했다. 있지도 없지도 않은 허령虛靈한 중이 갖는 그같은 조화造化의 능력은 음양의 원리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신적神的인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중은 숨겨져 있고 미세하면서도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나타난다는 발현이다. 중은 은닉으로부터 스스로 그 자체를드러낸다. 중의 발현은 그런 의미로 참[진리]이다.

종합하면 중은 비실체적인, 허령한 것으로서 발현의 이행이며 머묾이다. 이와 함께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신령한중의 공능功能이란 모든 것이 중의 발현 안에서, 그것을 통해, 그것으로부터 비로소 저의 마땅함을 얻게 되는 비은폐론적 사건으로서 확인된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을 피하지만, 우리는 하이데거의 존재 규정에서 중의 성격을 떠올리듯, 중에 대한 위의 설명에서 하이데거 존재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

천도로서 중이 본질적으로 위와 같은 사태로 있기에 그것을 향한 응대인 신독은 다음과 같이 수행된다. 신독은 사사로운 의념과 작위를 일으키지 않고 천도인 중 자체가 스스로 발현하고 자연스럽게 유행流行하도록 놔두는 경계다. 감춰져 있고 미세한 것을, 주체 중심의 관점에서 인위적으로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물러서 그것이 스스로 그 자체를 내보이도록 한다. 하고 신적神的이며 은미로부터 밝게 드러나는 중을 올바로 보고 듣기 위해서는 비본래성이 끊겨야한다. 친숙한 것들에서 뒤로 물러나, 대개의 사람은 모르고 자신만이 홀로 아는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 오직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중용에서 인간의 마땅함[人道]은 천도인 성을 향한 성지誠之에 있다. 그리고 존재자의 존재인 성에 따르는 신독은 성지자誠之者로서의 수행修行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신독은 인간의 본질, 그의 인간됨[誠之者]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이제 이같은 중용의 관점에 하이데거의 사유가 얼마만큼 상응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

하이데거에서 존재는 발현이라는 본질상 필요로부터 개현의 장으로써 사유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존재는 그의 요구를 통해 인간에게 관여함(an-gehen)으로써만 현성하고 존속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비로소 존재를 위해 열려 있고, 존재를 현-(An-wesen)으로서 도래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존은 밝게 트임의 개방된 여지를 필요로 하며 그러한 필요를 통해 인간 본질에게 맡겨져 있다.”(Identitiät und Differenz) 그러고 보면 인간에 대한 존재의 요구 혹은 위력은 기실 존재의 편에서 유한성의 내밀한 고백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존재가 사유를 통해 자신의 본질인 비은폐나 발현으로 머물 듯이 사유, 나아가 사유하는 인간 또한 이러한 존재의 씀을 통해 제 본질을 다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탈자적 응대의 관련으로 있으며, 오직 이 관련 자체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특출함은 그가 사유하는 본질로서 존재에 열려 있고, 존재 앞에 세워져 있으며, 존재에 관련된 채 머물면서 그렇게 존재에 상응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인간은 본래 이 상응(Entsprechung)의 관련으로 있으며, 다만 그 상응의 관련이다.”(Identitiät und Differenz) 그래서 인간 또한 존재의 불러 세움에 기억과 감사로써 맞이함으로써 이윽고 제 본질로 정주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존재를 사유하고 그 존재 진리의 빛 안에서 존재자와 관계 맺는 실존’, ‘-’(Ek-sistenz), ‘존재의 목자牧者’ ‘존재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존재의 부름에 순종하여 섬기고 돌보며 지키는 겸비謙卑는 구속과 굴종이 아니라 오히려 비로소 그의 존엄(인간됨)을 최상으로 실현하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존재의 부름에 응하는 사유 역시 비로소 그를 통해 제 본질을 얻게 되는 인간의 필요나 유한성, 말하자면 가난(Armut)”(Über den Humanismus)으로부터 수행되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의 존재 사유는 사유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참됨으로 살도록 해준 존재의 호의에 대한 감사함이다. 뿐만 아니라 자유로부터 나오는 존재 사유에서 인간은 비로소 안식(Ruhe)을 얻는다고도 말한다. 존재를 향해 사유로써 자신을 바치는 일은 존재가 자신의 진리를 위해 인간을 자기의 것으로 요구하는 발현의 현성에서 편안하다(heimisch).”(Wegmarken)

이렇게 존재와 인간은 서로에 대한 필요 혹은 유한성으로부터 서로를 향해 내맡기고 바침으로써 함께 속한다. 존재와 인간은 존재 사유 혹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존재 진리란 동일한 중심에서 서로 속하며 그런 방식으로 하나로 어울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양자는 서로를 본질로 있도록 한다. 그곳은 사태에 부합하여 다시 말하면, 기억과 감사의 사유가 열어 놓은 개방성이자 그리로 탈은폐하는 존재에 속하는, 존재 자신의 자리다. 현존(Anwesen)'an'(가까이)이자 인간 현존재(Dasein)'da'(거기에)이다. 둘 사이의 사이며 중심을 차지할 그 개방된 여지는 존재에 대한 상응으로서의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 살고 죽는 곳이다. 여기엔 구태여 능동과 수동, 와 종을 물을 수 없고 선후나 우열을 매길 수 없다. 애초부터 그러한 구별이 닿지 않는다. 나아가 양자는 그와 같이 동일한 것으로부터 동일한 것으로(Identitiät und Differenz) 함께 속한다는 의미로 동일하다.

이번에는 하이데거의 눈으로써 중용의 중 이해를 보자. 천도인 중은 은닉으로부터 스스로 그 자체를 숨김과 왜곡 없이 밝게 드러내는 발현으로, 그런 의미로 진리로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존재자의 존재이며 천하의 대본인 중의 신령한조화造化는 모든 것들이 그 중의 발현 안에서, 그것을 통해, 그것으로부터 비로소 저의 마땅함을 얻게 되는 비은폐론적 사건이다. 그런데 중의 진리, 발현에는 이미 그리로 신독하고 성지誠之하는 인간이 이미 짝을 이루고 있다. 오직 신독의 인간이 있는 한, 중은 자신의 참됨인 발현으로 머문다.

인간은 본래 중을 향해 끊임없이 마음을 모으고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여 굳게 지키는[愼獨; 誠之] 자며 다만 그 뿐이다. 인간의 본질 내지 그의 도[人道]는 그와 같이 자신만이 알고있는, “안에 간직된 것이 밖으로 환히 드러나는중의 발현에 상응하는 데, 즉 적중的中하는 데 놓여 있다. 따라서 인간은 중의 발현, 중의 진리에 호응함으로써 이윽고 저의 마땅함을 실현하게 된다. 중과 인간은 이렇게 서로를 향하면서 각자의 참됨에 이르며 하나로 속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그들 사이의 사이로서 열리는 한 동일한 것에 공속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이 동일한 중심[天人之際] 중의 발현 방식과 지평으로서 중에 속하며 나아가 중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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