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유목민 이야기 21회 몽골에서 판노니아까지 : 아바르족의 대이동

김현일 연구위원

2016.10.17 | 조회 11015

■유목민 이야기 21회 

 

몽골에서 판노니아까지 : 아바르족의 대이동

 

 

아바르족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사서는 앞에서 우리가 여러 번 소개한 비잔틴 역사가 프리스쿠스이다. 그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말년 어느 때 사라구르족(사라구로이), 우로그족(우로고이), 오노구르족(오노구로이)이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왔다. 이들은 사비르족(사비로이)에게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서쪽으로 도망 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비르족 역시 아바르족에 의해 자신들의 영역에서 쫓겨나 이들의 땅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연쇄적 이동의 물결이 5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아바르족 역시 이들 족속들처럼 더 강한 족속에 의해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프리스쿠스는 아바르족이 오케아노스 가에 사는 족속들에 의해 쫓겨났다고 한다. 오케아노스 가에 사는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10세기에 편찬된 비잔틴의 백과사전 수다Suda의 기록에 의하면 오케아노스 가에 사는 그 족속들은 오케아노스가 넘쳐나면서 생긴 안개와 그뤼폰 떼의 출현 때문에자신들의 땅을 떠났다고 한다. 여기서 오케아노스가 어떤 바다를 가리킬까? 새의 머리와 짐승의 몸을 한 괴수 그뤼폰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알타이 산맥 근처에 있는 큰 호수가 여러 단계의 전달과정에서 오케아노스로 둔갑한 것은 아닐까?

고대 그리스에서 많은 예술작품의 주제가 되었던 그뤼폰(gryphon) 전설의 기원을 추적한 미국의 아드리엔 메이어 여사에 의하면 그뤼폰은 알타이 지방과 몽골에서 많이 발견되는 공룡의 화석을 보고 그곳 사람들이 상상해낸 괴수라고 한다. 알타이에는 사금이 많이 났는데 그뤼폰은 그 황금을 지키는 괴수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동방의 괴수 이야기가 초원의 유목민들을 통해 그리스까지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설적 괴수 그뤼폰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케아노스는 주변에 넓은 초원지대가 있던 바이칼 호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케아노스가 정확하게 어디를 지칭하는 것인지 여부는 제쳐두고 프리스쿠스의 기록과 수다에 나오는 유목민들의 연쇄적 침략과 이동의 물결을 만들어낸 사건은 몽골과 알타이 일대에서 시작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스쿠스의 기록에 나타난 아바르족에 대해서는 중국 사서에 보이는 유연(柔然, Juan-juan)이라는 주장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리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이다. 단지 필자는 5세기 전반 중국 북방 초원지대에서는 탁발 선비족이 유연을 여러 차례 정복하여 유연이 근거지에서 쫓겨난 일이 있었다. 탁발 선비족은 유연 뿐 아니라 북중국의 모든 유목민족을 정복하고 통일 왕국을 세웠다. 이것이 북위(北魏)라는 나라였다. 고비 사막 부근에 살던 유연은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였다.

탁발 선비에 의해 유연을 비롯한 여러 유목민족들이 몽골에서 쫓겨나 중앙아시아로 이동하면서 민족들의 연쇄적 이동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프리스쿠스의 기록에 반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연은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중앙아시아와 몽골 일대에 걸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투르크 제국을 세운 돌궐족은 이러한 유연의 지배 하에 있던 족속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유연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반란의 우두머리는 부민(한자로는 土門으로 되어 있다)이란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돌궐 제국을 세운 인물이다. 돌굴에 의해 패배한 유연족 카간 아나괴는 자살하고 유연 제국은 붕괴하였다. (552) 한 세기 반 정도 북방 초원을 지배하던 유연족은 중국의 변경 지역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북제(北齊 : 북위에서 나온 나라)의 변경수비병 노릇을 하였다. 또 다른 일파가 돌궐의 공격을 피하여 서쪽으로 달아났는데 많은 역사가들은 이들이 아바르족이라고 한다. 비잔틴 기록에 의하면 그 수는 약 2만 명이었다. (Menander, Fr. 10-1)

아바르족이 비잔틴 제국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재위 527-565) 말년인 559년경이었다. 그 사절들은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어깨 너머로 넘긴 스타일 때문에 당시 비잔틴 인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러한 아바르족이 유연족이 아니라 투르크가 멸망시킨 에프탈족이라는 주장도 있다. 에프탈 (에프탈 훈족이라고도 불린다)은 원래는 몽골계에 가까운 유목민으로서 알타이 지방에서 서투르케스탄으로 이주한 후 5세기에 월지와 북인도를 정복하였다. 중국 사서에서는 염대(厭帶) 혹은 염달(厭韃)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인도측 기록에는 후나로 불리웠는데 프로코피우스 같은 비잔틴 역사가는 훈족과 같은 종족이라고 보았다. 에프탈은 565년 북방의 투르크와 서남쪽의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협공을 받아 멸망하였는데 그들의 일부가 서쪽으로 도주하여 아바르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르네 그루쎄의 주장이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142)

비잔틴 가까이 접근한 아바르는 처음에는 비잔틴 제국의 동맹으로 나섰다. 메난데로스에 의하면 아바르는 비잔틴의 이이제이 정책에 호응하여 우니구르(우니구로이), 잘리(잘로이), 사비르(사베로이)를 격파하였다. 메난데로스의 사서를 역주한 블로클리에 의하면 이들은 흑해 북안과 동안에 살던 훈족의 여러 부족들이라 한다. 아바르족은 동유럽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우티구르, 쿠트리구르 같은 훈족의 후예들도 쳐부수고 자신들의 휘하에 두었다. 특히 쿠트리구르의 일만 병사들을 앞세워 판노니아 평원으로 진격하였다. 당시 판노니아에 살던 롬바르드족(랑고바르드족)과 동맹을 체결하고 게피다이 족을 정복하였다. 롬바르드족은 전쟁에서 성공하면 게피다이 인들의 땅은 아바르의 차지가 될 것이고 전리품은 절반씩 나누기로 하고 아라브를 게피다이족과의 싸움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아바르 족이 게피다이 족을 격파하고 예전 훈족의 근거지를 차지하게 되자 롬바르드족 역시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이탈리아로 넘어가 이탈리아 북부를 정복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참고문헌

 

R. C. Blockley, The History of Menander the Guardman (Francis Cairns, 1985)

R. C. Blockley, The Fragmentary Classicising Historians of the Later Roman Empire, Eunapius, Olympiodorus, Priscus and Malchus. Text, Translation and Historiographical Notes.

Adrienne Mayor, The First Fossil Hunter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0)

르네 그루쎄, 김호동 외 역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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