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유목민 이야기 3회 아시아에서 온 스키타이족

2016.03.23 | 조회 12052

■유목민 이야기 3회

 

아시아에서 온 스키타이족

 



  스키타이인들은 BCE 2세기경에 사르마타이족에 의해 흑해 북안과 남러시아 일대에서 밀려나기 전까지 동유럽의 상당 지역을 지배한 기마유목민족이었다. 물론 스키타이인들은 문자로 된 기록을 남겨놓지 않아 그 기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BCE 5세기에 살았던 헤로도토스도 스키타이족의 기원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서 그 자신이 가장 그럴듯하게 여긴 이야기는 스키타이족이 원래는 아시아에서 살던 유목민이었는데 맛사게타이인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아락세스 강을 건너 킴메리아 인들이 살던 흑해 북안으로 이주하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인들의 원향이 구체적으로 아시아 어느 곳이었던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스키타이족은 헤로도토스의 말에 따르면 페르시아에서는 ‘사카이(사카족)’이라고 불렸다. 사카족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페르시아 용병으로 참여하였는데 많은 부족들 중에서 페르시아인들과 더불어 가장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하였던 사카족을 ‘아뮈르기온’ 출신 스키타이족이라고 하였는데 아뮈르기온 평원은 옥수스 강(시르다리야 강) 동쪽의 페르가나 지방에 위치한 초원지역으로 생각된다.

  사카족도 단일한 집단은 아니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의 비문에 등장하는 사카 부족들로는 ‘사카 티그라카우다’ (고깔모자 사카족), ‘사카 타라드라야’ (흑해 너머의 사카), ‘사카 하오마바르가’(하오마를 마시는 사카) 등이 있는데 두 번째 사카족은 헤로도토스가 그의 역사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스키타이족이다. 사카 티그리카우다는 다리우스 1세 때 (BCE 510년경) 페르시아에 반기를 들었던 페르시아에 예속된 족속이었다. 세 번째 사카 하오마바르가족이 헤로도토스가 ‘아뮈르기온 스키타이족’이다. 하오마는 환각성이 있는 식물로 대마와 같은 식물로 보인다. 하오마 풀을 음료로 만들어 마시는 관습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사카족이 카스피해 동쪽의 중앙아시아와 남부 시베리아 일대에 살았던 것은 확실하다. 심지어는 파미르 고원 너머 알타이 산지까지 이들의 자취가 보인다. 예를 들어 1929년부터 발굴된 파지리크 고분의 주인공들이 사카족으로 여겨진다. 그 고분들에서는 스키타이 형식의 많은 동물문양의 금속조형물들이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문신을 한 미라, 심지어는 카펫까지도 온전한 모습으로 출토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물이 고분에 침투한 후 얼어서 여름에도 녹지 않는 상태로 2천년 이상 내려온 때문이다. 고분이 냉동고 속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파지리크 5호분에서는 모전 직물이 출토되었는데 말을 탄 기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기사의 모습은 수염을 기른 스키타이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직물이 알타이 지역에서 제작된 것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수입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스키타이 문화가 알타이 지역까지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카족이 이 지역에 살았을 가능성도 높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긴밀한 접촉을 하였던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인들의 일부는 유목생활을 버리고 정착해서 농사를 지었다. 헤로도토스의 말에 따르면 ‘농경 스키타이족’은 자신들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다 팔기 위해 농사를 지었는데 특히 스키타이인들이 생산한 밀은 평야 지역이 부족한 그리스 세계로 대거 수출되었다. 그리스인들에게 밀 외에도 꿀, 가죽, 말린 물고기, 황금 등을 수출하고 반대로 포도주, 올리브 유, 금속제품, 장신구, 갑옷과 투구 등을 수입하였다.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인들 뿐 아니라 주변 족속들과 활발한 교역을 하였다.

   현재 스키타이인들이 남긴 유물들 가운데서는 황금으로 만든 장식품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2012년 <스키타이 황금유물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서울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적이 있다. 그 공예품들의 미적 가치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보며 필자에게 든 의문은 스키타이인들이 가진 그 많은 황금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가 라는 것이었다. 킴메르인들처럼 스키타이인들도 주변 족속들을 약탈해서 금을 획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알타이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금을 축적했을 가능성도 높다.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그리핀 전설이 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의 나라들이 만나는 접경 지역에 위치한 알타이 산맥은 원래 금이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알타이라는 말도 금에서 나온 것이다. 2세기 그리스의 유명한 여행기 작가 파우사니아스에 의하면 그 금은 지표면이나 지표면에서 가까운 곳에서 얻어졌다고 한다. 알타이의 금은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계곡으로 씻겨 내려간 사금의 형태로 채굴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스키타이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리핀이라는 상상의 새가 알타이의 금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이 남긴 조각이나 그림에는 그리핀은 네 발을 가진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사가 아드리엔 메이어에 의하면 그리핀은 ‘프로토케라톱스’라는 공룡의 화석을 보고 알타이 유목민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었다. ‘프로토케라톱스’는 알타이 지역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그 화석과 알이 많이 발견된다. 프로케라톱스는 중생대에 살았던 공룡의 일종이라서 인간이 만날 수 없는 동물이었지만 알타이인들은 그 화석을 보고 그리핀이라는 새를 상상해 내었다. 그리핀의 이야기는 중앙아시아에 살던 스키타이 유목민에 의해 서쪽으로 전파되어 그리스인들의 예술과 신화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인들이 접촉하던 아시아의 여러 족속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망자의 고기를 제물의 고기와 함께 먹는다는 잇세도네스인들, 그리고 그 북쪽에 산다는 외눈박이 아리마스포이족, 땅의 최북단에 사는 휘페르보레오이족 등이 그러한 족속들이었다. 그리스인들 가운데에는 호기심 때문이었던지 스키타이인들의 땅을 지나 잇세도네스인들이 사는 곳까지 간 사람도 있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책에 나오는 ‘아리스테아스’라는 시인이 그런 사람인데 그는 잇세도네스인들에게 가서 그들로부터 아리마스포이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아리마스페이아》라는 서사시를 지었다고 한다. 세 권으로 되었다는 이 시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데 전해졌다면 BCE 7세기경의 그리스인들이 북방민족에 대해 어떠한 관념을 갖고 있었던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아리마스포이족은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과 싸웠다고 그리스인들은 들었다. 이는 알타이 지역에서 난 금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았던 사실을 암시해주는 것은 아닐까? 험난하고 위험으로 들끓는 먼 길을 통과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실크로드 교역은 그렇게 금을 얻는 지난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참고서적 : Adrienne Mayor, The First Fossil Hunter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0)

 

   글쓴이: 김현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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