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유목민 이야기 1회

2016.03.09 | 조회 11331

  본 연구소 역사문화연구부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현일 연구위원의 글 「유목민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 글은 우리 민족의 원형을 탐구하는 데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김현일 박사 약력-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문학박사)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EHESS에서 연구

⦁연구논저 및 번역서 : 『서양의 제왕문화』, 『동학의 창도자 최수운』 등의 저서와 『프랑스문명사』, 『절대주의국가의 계보』, 『금과 화몌의 역사』 등의 번역서가 있다.  



■유목민 이야기 제1회


1. 서양에 나타난 최초의 유목민 킴메르인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서양 역사학의 원조로 꼽히는 책이다. 페르시아인들(현대 이란인들의 조상)과 그리스인들과의 전쟁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다룬 이 책은 단순히 페르시아 전쟁사로 끝나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그 책은 사서로서는 그렇게 큰 명성을 누리질 못했을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민족들에 대한 상당히 상세한 서술을 남겨놓았다. 그의 《역사》는 그래서 역사책일 뿐 아니라 인류학적 정보가 잔뜩 담긴 ‘민족지(ethnography)’라고 할 수 있다. 스키타이인들과 그 주변 족속들에 대한 정보가 잔뜩 들어 있는 제4권이 그런 부분이다.

헤로도토스가 살던 시기에 흑해 북부 지역은 스키타이인들의 땅이었다. 이들은 일부는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유목민이었다. 호기심 많은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인들의 생활방식과 독특한 (심지어는 괴이한) 풍습들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스키타이인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침략한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반세기 전에 페르시아의 침략을 맞아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였던 그리스인들처럼 페르시아로부터 침략을 받았다는 면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헤로도토스가 살던 시기에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큰 나라는 페르시아였다. 중동 일대가 몽땅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인데 이 페르시아 군대가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 유럽 땅으로 침략하였던 것이다. 스키티아인들은 페르시아 군대와의 직접적인 전투를 피하고 계속해서 후퇴하여 페르시아 군대로 하여금 지치게 만드는 전술을 썼다. 낯선 땅 깊숙이 끌려들어간 페르시아 군대는 두려움을 느끼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스카티아에서 퇴각해야 하였다. 당시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기 위해 다리우스 대왕은 배를 연결하여 그 위에 판자를 덮어 다리를 만들었다. 이 선교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이었다.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 대해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페르시아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퇴각로가 끊길까봐 허겁지겁 퇴각을 결정한 것이다.

오늘날 보스포로스 해협이라고 불리는 이 해협은 지금은 터키의 영토에 속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그리스인들의 세계에 속했다. 해협에 면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원래 비잔티온이라는 그리스 도시가 있던 곳이다. ‘보스포로스’라는 이름부터가 그리스 말에서 왔다. 황소(보스)가 건넌 곳(포로스)이라는 뜻인데 황소로 변한 여인 이오 신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보스포로스라는 이름의 장소가 또 하나 있었다. 흑해에 면한 아조프 해 입구에 있는 해협을 지금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부르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곳을 ‘킴메르 보스포로스’라 불렀다. 킴메르인들(kimmerioi)의 보스포로스 해협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이 킴메르인들의 땅이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보스포로스 해협 안쪽에 있는 바다는 ‘아조프 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고대에는 ‘마에오티스 호’라고 불렸다. 바다라고 하지 않고 호수라고 한 것이다. 염도도 낮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낮은 바다라 불릴 정도로 수심도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후대의 훈족이 이 케르치 해협을 건너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수심이 낮은 곳은 1 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제4권에서 스키티아인들의 기원에 대해 말하면서 킴메르인들에 관해 짧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킴메르 땅에 직접 가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쓴 헤로도토스의 정보는 너무나 소략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당시에 킴메르인들이 그곳에 살지 않고 이제는 주민이 스키타이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킴메르인들은 스키타이인들의 침략을 받고 그 땅에서 밀려났다. 둘째, 지금도 스키티아에는 ‘킴메르족의 성벽’, ‘킴메르족의 나루터’, ‘킴메르족의 보스포로스’라는 곳이 있다. 셋째, 킴메르족은 스키타이족을 피해 소아시아로 들어가 흑해 북안의 시노페 지역에 정착하였다. 넷째, 스키타이족은 킴메르족을 추격하여 카프카즈 산맥을 넘어 아시아로 들어갔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쪽으로 가는 바람에 메디아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아시아는 아나톨리아 지방 즉 ‘소아시아’를 의미한다. 다섯째, 킴메르인들은 아시아로 들어가 여러 곳을 약탈하였다. 킴메르인들은 리디아 왕국의 수도인 사르디스까지 함락시켰다. 그러나 리디아 왕 알뤼앗테스에 의해 아시아에서 쫓겨났다.

이상이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내용이다. 카프카즈 산맥 너머로부터 밀려들어온 킴메르인은 기마유목민으로서의 뛰어난 전투능력을 발휘하여 이곳저곳을 약탈하였다. 그런데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야기는 백퍼센트 정확한 것은 아니다. 소아시아에서의 킴메르인들에 관한 정보는 예상 밖에도 아시리아인들의 문헌에 나타난다. 리디아의 기게스 왕이 아시리아의 아수르바니팔 왕에게 도움을 청해 그들을 축출했다는 기록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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