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유목민 이야기 22회 아바르 제국

김현일 연구위원

2016.11.09 | 조회 10263

유목민 이야기 22

 

아바르 제국

 

 

 

아바르족은 코카서스 산맥 북쪽의 러시아 초원지대로부터 헝가리의 판노니아 평원까지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지역들에 살던 여러 족속들을 자신들의 지배 체제 하에 편입시켰던 것이다. 피지배 족속들은 아바르 족에게 공납을 바치고 때로는 군사력을 제공하였다. 그런 면에서 아바르 제국은 아바르 족을 지배집단으로 하는 여러 족속들의 연합(confederation)이라는 성격을 띠었다. 이는 그 이전의 훈 제국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아바르 제국은 다뉴브 강을 경계로 비잔틴 제국과 접하였다. 아바르 인들은 때로는 비잔틴 제국의 동맹(페데라티)으로, 때로는 제국의 영토를 침범하고 약탈을 자행하는 적이었다. 아바르족은 초기에는 비잔틴 제국의 요구에 호응하여 여러 족속들을 정벌하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후일 헝가리 건국의 주역이 되는 오노구르 족도 있었고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쿠트리구르와 우티구르 같은 훈족 집단도 있었다. 아바르족은 판노니아로 진출할 때 쿠트리구르의 1만 병력을 동원하였다. 쿠트리구르처럼 아바르에게 정복된 족속은 아바르족에게 공납이나 군사력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졌다. 또 슬라브족도 아바르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수적으로 볼 때 슬라브족이 가장 수가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피지배 족속들에 대한 대우도 족속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유목민 출신인 불가르인들은 일방적으로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니고 동맹부족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바르 카간은 슬라브족보다는 불가르인들을 더 가까운 사이로 생각하여 비잔틴 황제가 때때로 슬라브족을 공격했을 때에는 눈감아 주었지만 불가르족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평화협정에 대한 훨씬 심각한 위반으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사데츠키-카르도소, 210)

당시 슬라브족은 아직까지는 낮은 수준의 발전단계에 있어서 국가를 수립할 단계는 아니었다. 이들은 아바르족이 도래하기 전인 6세기 초부터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조금씩 침략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바르족에게 정복된 후 슬라브인들의 침략은 훨씬 규모가 확대되고 또 조직화되었다. 아바르 제국의 등장으로 비잔틴의 방어력이 약화되었던 사정도 작용하였지만 때로는 슬라브족이 아바르족과 연합하여 혹은 아바르족의 지휘 하에 비잔틴에 대한 공격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580년대에 있었던 슬라브족의 비잔틴 침공은 그 규모가 상당히 컸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꼽히는데 당시 슬라브족은 아바르와 비잔틴의 전쟁을 틈타 비잔틴 제국의 영토 깊숙이 침략을 자행하였다. 그들의 침략은 약탈에 그치지 않고 발칸반도의 여러 곳을 점령, 그곳에 정착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587년 여름 안테스인들(슬라브족의 일파)은 그리스 남쪽의 펠로폰네소스 반도까지 점령하였다. 슬라브인들의 공격으로 적지 않은 그리스 주민들이 달마티아, 이탈리아 그리고 에게 해의 섬들로 피난하였다. 이처럼 당시 슬라브족의 침략은 중세 초에 있었던 민족이동가운데 하나로서 연쇄적인 이주의 물결을 초래하였다.

당시 발칸과 그리스 일대에 정착한 슬라브족은 비잔틴 제국의 지배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나름대로의 자율권을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비잔틴인들은 자신들의 영토 내에 정착한 슬라브인들을 슬라브족의 한 족속 이름을 따라 스클라비나이’(sklavenai)라고 불렀다. (당시 슬라브인들은 안테스 족과 스클라베네스 족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스클라비나이가 그리스인들에 의해 천민집단으로 취급되었던지 아니면 위급할 때 용병으로 이용될 수 있는 이민자집단으로 취급되었던지는 탐구해야 할 문제이다.

슬라브족은 발칸의 다뉴브 강 이남 지역 뿐 아니라 서쪽으로는 판노니아 너머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서슬라브인들도 역시 아바르족의 후원 아래 이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슬라브족의 이주와 생활권 확대는 아바르 제국의 범위를 시사해준다. 동유럽의 슬라브족에 대한 아바르의 지배력이 어느 정도까지 광범하게 행사되었는지 시사해주는 기록이 있다. 7세기 비잔틴 역사가 테오필락트 시모카타가 남겨놓은 사서에는 발틱해 근처에 살던 일부 슬라브 부족장들은 먼 거리 때문에 아바르 카간에게 군사적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사죄하였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사데츠키-카르도소, 211)

아바르 제국은 630년대에 큰 도전에 처하게 되었다. 632년 훈족의 후예인 불가르족이 아바르족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 전까지는 아바르의 동맹으로서 아바르인들의 정복전쟁에서 충실한 역할을 하였던 불가르족(훈족)이 쿠브라트라는 인물의 주도 하에 반기를 든 것이다. 아바르와 함께 626년 비잔틴 제국의 공격에 나섰던 쿠브라트는 아바르 카간이 죽자 이번에는 카간의 자리를 불가르족이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불가르인들과 아바르인들의 내전을 촉발하였다고 한다. 쿠브라트는 돈 강에서부터 흑해 북안에 걸친 아바르 제국의 동부를 차지하고 불가리아 제국을 세웠다. 이것이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옛 대불가리아였다. 이후 아바르 제국은 판노니아 중심의 서부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그런 만큼 아바르 제국은 엘베 강 너머 독일 지역으로의 세력 확대를 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엘베 강 너머에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 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이 세력을 동쪽으로 확대하고 있었다. 두 세력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문헌

 

S. Szadeczky-Kardoss, ‘The Avars’, in D. Sinor ed. The Cambridge History of Early Inner As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P. Heather, Empires and Barbarians. The Fall of Rome and the Birth of Europe,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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