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와 세계문화

부활을 꿈꾸는 유라시아의 맹주, 러시아

Victor Atknine

2013.07.05 | 조회 9862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진 국가이고 거대한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나라이다. 역사적 활동 영역이 동양과 서양 사이에 걸쳐 형성된 결과 러 시아는 동서양의 문화적 유산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특징이 있다. 냉전 의 주역이었던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을 거쳐 현재의 러시아 연방으로 재편 되면서 예전과 같은 영향력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풍부한 자원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경제 공동체를 주도하고 있는 강대국이다.


 

1. 영토와 역사

러시아의 영토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영토(17,098,242 km²) 를 가진 국가로서 유라시아 대륙 북부 와 발트 해 연안으로부터 태평양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있으며, 면적이 한반 도의 77배, 미국이나 중국의 1.8배에 달한다. 국토의 북쪽은 북극권에 속해 인구가 희박하지만 남쪽으로 가까워질 수록 많아진다. 유럽 지역과 아시아 지 역(시베리아)의 대부분은 광대한 평원으 로 남부의 스텝과 북부의 툰드라 지대 가 펼쳐져 있다. 흑해와 카스피 해 사 이의 남쪽 국경에는 유럽 최고봉의 엘 브루스산(5,642m)산을 포함한 카프카스 산맥이 있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는 우랄 산맥이 있다. 국토를 둘러싼 바다에는 북극해의 일부인 바렌츠 해, 백해, 카라 해, 랍테프 해, 동시베리 아 해와 태평양의 일부인 베링 해, 오 호츠크 해, 동해, 서쪽의 발트 해와 서 남쪽의 흑해가 있고, 해안선은 37,000 km에 이른다. 이러한 바다에 위치한 러시아의 중요한 섬은 프란츠요제프 제 도, 노바야젬랴 섬, 세베르나야젬랴 제 도, 노보시비르스크 제도, 브란겔랴 섬, 사할린 섬, 그리고 일본과의 영토 분쟁 중인 쿠릴 열도가 있다. 러시아의 주요한 강에는 유럽 쪽의 돈 강, 볼가 강, 카마 강, 오카 강, 아시아 쪽의 오 브 강, 예니세이 강, 레나 강, 아무르 강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시베리아 남서쪽 부라티야 공화국에 있는 바이칼 호(Lake Baikal)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수심 이 제일 깊은(1,642m) 호수로 유명하다.

 


러시아의 역사
역사적으로 현재 러시아의 유럽 부분 과 우크라이나Ukraine의 북부, 그리고 벨라루시Belarus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는 동슬라브Eastern Slavs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동슬라브족의 서쪽에는 발트 Baltic족, 동쪽이나 북쪽에는 핀우그리 아Fenno-Ugrian어파에 속한 핀Finnish족들 이 그들과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남쪽의 흑해 해안의 스텝은 여러 언어 를 사용하는 유목민들이 거주했다. 아 시아 쪽으로 더 나아가면 또한 중앙아 시아와 넓은 시베리아지역에서 러시아 인과 다른 계통의 여러 민족이 독자적 인 전통과 역사를 걸어 왔다. 이 유목 민 상당수는 터키Turkic계였다. 그러므 로 러시아의 역사를 좁게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모스크바 대공국 형성 역 사만을 말하지만, 넓게는 우랄, 중앙 아시아, 시베리아와 극동 오호츠크 해 연안까지 형성된 국가 발전의 역사도 같이 봐야 한다.


고대의 역사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러시아 남쪽 타 만Taman 반도에는 이미 약 100~150만 년 전에 원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영토에 현대인(homo sapiens) 이 살았던 가장 오랜 곳은 코스텐키 Kostenki와 바라이스카야Zaraiskaya(BCE 45,000~35,000), 순기리Sungir(BCE 25,000) 등이 다. 또한 아시아대륙의 시베리아지역도 인류 발생지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주 목할 점은 청동기 시대인 BCE 3,000 년 경에 알타이Altai산과 사얀Sayan산 지 역에 이미 축산과 농사 그리고 금속공 학이 발달한 아파나시예프스카야 문 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다른 여러 문명도 생겨났다. 이와 같은 아 시아 쪽 문명의 후계자들에 의해 현대 러시아 영토에 가장 먼저 나타난 국가 는 552~745년 경 시베리아 남반부와 중앙아시아에서 형성된 튀르크(터키, 돌 궐) 한국汗國이었다. 돌궐의 대제국이 붕 괴한 다음은 7~10세기에 볼가Volga 강 의 하류에 하자르Khazar 한국이 형성되 었고, 현재의 연해주에는 발해Bohai국(대 진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10~14 세기 볼가강 중류에는 볼가르 한국이 있었다.

위의 국가 중에서 특히 돌궐(또는 괵튀 르크 Gokturk) 대제국은 557년의 영토가 6,000,000km²에 달할 정도의 규모를 갖고 있었다. 괵튀르크는 하늘의 튀르 크 혹은 천상의 튀르크라는 의미이다. 왕과 왕비는 뗑그리(Tengri, 하늘이라는 의미) 와 우마이(Umai, 삼신에 해당하는 여신)라는 두 신의 지상 현현으로 존경을 받았다. 돌궐은 또한 자기 자신의 독특한 룬 (rune)문자를 자랑했다.

 

고대왕국 키예프 루시(Kievskaya Rus)
본 러시아 민족이 속한 고대 슬라브Slav 족이 역사 속에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 은 약 5세기부터라고 한다. 그 무렵 광 활한 대평원 지대를 드나들던 민족들 의 대이동과 분산이 시작되었고 슬라 브족은 흩어져 최종적으로 동東슬라브 인과 서西슬라브인, 그리고 남南슬라브 인으로 나뉘게 되는데, 862년에 노르 만인 류릭Ryurik이 현재 러시아의 서북 쪽 노브고로드에 와서 공후로서 슬라 브인들을 다스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러시아 역사의 원년으로 제정된다.

 

뒤이어 올레그Oleg공은 882년에 남쪽 으로 키예프까지 세력을 확장하였고 러시아의 최초의 통일국가인 키예프루 시(Kievskaya Rus)를 건설하였다. 988년에 는 키예프의 왕 블라디미르Vladimir 대공 이 본래 다신교적 민간 토속신앙을 가 지고 있던 루시의 국민들을 유일신 종 교를 통해 이념적으로 통일시키기 위해 ‘그리스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이로 써 고대 루시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 스탄티노폴을 중심으로 하는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몽골 지배기(1240-1480)
1240년 키예프루시는 몽고족 칭기즈 칸의 손자로 킵차크 한국(중앙아시아 북부 와 동유럽 지역에 성립)을 세운 바투Batu 칸Kahn 의 공격을 받으면서 결국 멸망하였다. 이후 240년 동안의 몽골 지배를 받으면 서 러시아는 정치, 경 제, 사회, 문화 및 체제 에 있어 아시아의 강력 한 영향을 받게 됐다.

 

몽골은 피정복민의 행 정구조와 종교, 관습 등을 유지하면서 굳이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 고 오히려 정교회와 그 성직자들에게 몽골 칸의 안녕을 기도해 주는 대신 면세혜택을 주었다. 이러한 몽골지배 는 러시아인의 정서나 정체성, 사회제 도, 관습 등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유 럽과 아시아 가운데 있던 러시아는 더 욱더 아시아적인 색채를 얻게 됐다. 몽 골지배가 러시아에 남긴 대표적인 유 산은 제국주의적 야심과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체제, 농 민의 농노화 등이다.

 

 

모스크바 공국(1147-1613)
몽고의 지배하에서 12세기 경 가장 크 게 성장한 것은 모스크바 공국이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몽골 칸들에게 절대 적인 충성을 보여 주면서 영토 확장과 경제력 강화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점 차 루시의 제 1의 공국이 됐다. 군사적 으로 힘을 얻자 1380년에 쿨리코프스 카야 전투(Kulikovskaya bitva)에서 몽골군대 에게 처음으로 승리했다.

 

그 후 100년 지나서 이반3세는 몽골 지배 종식을 선언하여 모스크바는 전 루시의 정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반3세(이반대제)는 전 루시의 전제군주 라는 뜻에서 최초로 차르Tsar(라틴어 어원 은 Caesar)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 고 이반4세(이반뇌제,번개왕)는 왕권을 강화 하면서 러시아의 영토를 서쪽으로는 발트해Baltic Sea,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Siberia까지 확장함으로써 러시아가 대제 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 였다.

 

로마노프 왕조(1613-1917)
이반4세 사후 모스크바 공국은 위기 를 겪다가 결국 1610년 폴란드의 침입 으로 망하게 되는데, 러시아인들은 국 민군을 조직해 저항하면서 폴란드군을 물리쳤고 1613년에 이반 4세의 조카인 미카엘 로마노프가 왕으로 옹립되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탄생하였다. 로마노프 왕조의 4번째 군주인 표트르(피터) 대제 (Pyotr I, Peter the Great, 재위 1762~1796)는 러시아 의 세종대왕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차르 권좌를 차지하자 넓은 영토 를 가졌으나 낙후된 러시아를 강대한 제국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구로부터 산업기술과 문물을 도입하였다. 또 교 회를 개혁하여 교권이 국가에 종속되 도록 했으며 대대적인 영토 확장 정책 을 실시하여 현재의 러시아 영토 대부 분을 지배하는 최초의 러시아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1703년 네바강 하구 부 근에 표트르 혹은 성 베드로의 도시라 는 의미를 지닌 ‘상트페테르부르크’(후에 레 닌그라드로 바꾼 후 최근에 다시 원래의 지명으로 복귀) 를 건설한 뒤, 1713년 제국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러시 아는 표트르 대제가 실현한 수많은 개 혁들로써 공업과 산업의 튼튼한 기초 를 마련하여 드디어 서유럽과 동등하 게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황제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 독일계 여 성군주 예카테리나 대제(Ekaterina II, Catherine the Great, 재위 1762~1796)이다. 표트르 3세에 게 시집을 와서 남편 재위 반 년 만에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그녀의 시대는 러시아의 황금시대, 부와 찬란함의 시대 로 불리울 정도로 문화 예술과 과학이 장려되고 꽃피워진 시기였다. 또한 대 외적으로 표트르 대제의 팽창정책을 계승하여 크림반도와 흑해, 폴란드 그 리고 시베리아 극동까지 진출하는 광 대한 제국을 이루었다.

 

예카테리나 대제의 손자인 알렉산드르 1세 재위 시절, 당시 유럽 정복전쟁을 수행하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유 일하게 정복하지 못하였던 영국을 경 제적으로 봉쇄시키기 위해 베를린칙령 (대륙봉쇄령)을 발표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 대해 영국과의 통상 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득보다 실이 많 았던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깨뜨리 자 나폴레옹 1세는 1812년에 60만 명 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다. 러시아는 치열했던 이 조국 전쟁(Patriotic War)에서 모스크바를 내어주고 후퇴했 으나 결국은 반격에 성공하였고, 나폴 레옹은 3만 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초 라하게 유럽으로 되돌아갔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알렉산 드르 1세는 여세를 몰아 비엔나 회의 를 주도하면서 핀란드, 베사라비아 등 을 획득하면서 유럽에서의 지위를 격 상시켰다. 그 무렵에 러시아의 최대의 시인 푸슈킨(Pushkin)이 나타난다. 그의 시는 나폴레옹 전쟁과 연계된 애국적 분위기를 담아냈고 정치독재에 항거하 는 내용도 싣고 있었다.



 

혁명의 시대(1894~1917)
19세기 중반에 12번째 군주로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가 크 림전쟁(1853~1856)의 패배로 치명적인 타 격을 입고 국제적인 위상이 추락하자 국내적으로 개혁과 근대화를 약속하 였다. 그는 1861년 농노를 해방하고 1864년 지방자치기구를 설치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러 한 혁명적인 개혁은 오히려 농민이 더 욱 지주에게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하 였으며, 이러한 불만은 농촌개혁운동(V narod, ‘민중 속으로’의 의미)을 낳았고 인민주의 자들narodniki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혁명 사상을 싹트게 하였다. 전제군주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음에도 이후의 러시아의 전제군주(짜르)들은 비밀경찰 에 의한 감시와 통제, 암살과 같은 폭 력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그러자 지하 반체제 세력은 사회혁명당을 만 들어 토지의 공동소유, 소수민족의 자 치권 인정 등을 주장하였다. 러일전쟁 패배(1905) 이후 전제군주제의 몰락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905년 1월의 ‘피 의 일요일’사건은 시위·폭동·총파업 등 총체적인 혼란을 가져와 로마노프 왕 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였다. 14번째 군주 니콜라이 2세는 1905년 ‘10월 선 언’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인정하 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할 수 밖에 없었 다. 형식상 입헌군주제이지만 여전히 황제는 절대권을 행사하였다. 제1차 세 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프랑스와 삼 국협상을 맺고 있던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하였으나, 독일침입에 대비한 초토 화작전의 실패로 경제가 파탄이 나고 반전의식은 더욱 강해졌다. 그 결과 국 민적 불만이 폭발하여 일어난 1917년 의 3월 혁명(구력 2월)으로 니콜라스 2세 가 퇴위하면서 로마노프왕조는 막을 내렸고, 권력은 임시 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자, 이에 대항하 는 노동자와 병사들의 대표들로 구성 된 볼셰비키(러시아 사회 민주당 내의 다수파를 뜻하는 bolshevik의 복수형)혁명 세력이 전국 적으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1917년 11 월 7일(러시아 구력으로 10월 25일)에 레닌Lenin 이 이끄는 볼셰비키파가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성공 하여,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 섰다.

 

소련의 성립과 스탈린의 통치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내전을 수 습하고 공산당 독재를 바탕으로 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을 선 포했다. 1922년 소련이 러시아, 우크라 이나, 벨라루시, 자카프카스의 연합연 방으로 성립되었으며 1920년대 말에 중앙아세아까지 확대되었으므로 소련 은 지구의 6분의 1을 차지하게 되었다.

 

1924년 레닌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스 탈린이 서기장이 되었는데, 스탈린은 비상한 전술과 조직력으로 경쟁자들 을 모두 제거하고 1920년대 말에 소련 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정적 들은 모두 축출되었으며 트로츠키는 망명지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 살자에게 살해당했다. 1930년대 스탈 린은 자신의 우상화 작업과 함께 광범 위한 숙청 작업을 벌였으며, 이 시기에 소련 극동 지방(연해주)에 거주했던 고려 인들 171,781명이 1937년 10월 중앙아 시아에 강제로 이주되었고 이 과정에서 2만 5천여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 였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스탈린은 독 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였으나 1941 년 6월 22일 독일이 조약을 깨고 소련 에 진격을 하자 소련 영토 내에서 치열 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1945년 5월에 소련과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 는데 소련은 미국과의 합의로 동유럽 에 소련의 지배를 확인받았으며 만주 와 외몽고 그리고 사할린에서도 소련 의 이권을 인정받았다. 동방 전투 지역 에서도 소련군이 대일전에 참여함으로 써 한반도 분할에 나섰다.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시대
러시아는 1953년 스탈린에 이어 흐루 시쵸프가 집권하였다. 그는 1956년 제 20차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스탈린을 격하시키고, 여러 부문에 걸쳐 탈스 탈린 정책을 전개하였으나 경제회복 의 실패, 헝가리의 반소운동(1956) 등으 로 1964년 실각되고 대신 브레즈네프 가 집권하였다. 브레즈네프는 사회주 의 국가들과 유대를 강화하고 제3세계 의 민족해방전쟁을 지원하며,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는 등 전세 계에 걸쳐 소련의 영향력을 확대하였 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화해 시도, 서독과 상호협력조약, 전략무기제한협 정(SALT 협정), 헬싱키협정 등 ‘데탕트 노선’ 을 취했다. 그러나 1979년 아프가니스 탄 침공으로 화해무드는 사라지고 ‘신 新냉전’ 구조로 바뀌었다. 대내외 정책 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소련 의 안정기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브레즈네프가 사망하자 집권 한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 정권은 기본 적으로 브레즈네프 노선을 답습하였 을 뿐만 아니라 단명에 그쳤다. 하지만 1985년 지도자로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소련사회에 대변혁을 초래하였다. 그는 경제침체와 외교적 고립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페레스트로 이카(개혁), 대외적으로는 글라스노스트(개 방)라는 실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의 개혁정책은 외교면에서는 큰 성과를 얻었지만 국내정치 및 경제에서는 부분 적인 성과에 그쳤고 오히려 경제의 혼 란과 연방 내 공화국간의 갈등이 심화 되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아래 소련 내 각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이 크 게 일어났다. 1990년 2월 공산당 일당 독재가 부정되고 복수정당제가 열렸으 며 당과 국가를 분리한다는 방침이 정 해졌고, 3월에는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 령직이 신설되어 고르바쵸프는 구소련 공산당서기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구소 련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90년 6월 러시아는 독자적인 러시 아 공산당을 출범시키고 주권선언을 하였는데, 당시 러시아 최고회의의장 이었던 옐친(Boris Yeltsin)은 제28차 공산 당대회에서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며 공산당 탈당을 선언하였다. 이 사태 이 후 구소련연방의 해체가 촉진되었다.

 

1991년 6월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으 로 당선된 옐친은 공산당의 이념적 독 재를 폐기하고 공산당의 정치적 영향 력을 없애는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보 수파 및 구소련 연방의 대통령인 고르 바초프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 황에서 1991년 8월 19일 보수파의 쿠 데타 시도가 옐친에 의해 진압되면서 옐친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 다. 옐친은 연방정부를 무력화하고 러 시아공화국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하여 1991년 10월 러시아공화국의 독자적 인 경제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3개 법 안을 통과시켰다. 마침내 1991년 12월 11개 공화국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 마티에서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독립국가연합) 결성에 합의함으로써 구소련은 완전히 해체되고 1992년 1월 1일자로 러시아를 비롯한 각 공화국은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오늘의 러시아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러시아는 푸틴 (Vladimir Vladimirovich Putin)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옐친 대통령 대행으로 1999 년 12월 31일 갑작스럽게 집무를 시작 하기 전에 푸틴은 15년 간 KGB 요원, FSB(구 KGB) 국장(1998년), 총리(1999년)를 역 임했다. 2000년 정식 대선을 통해 대 통령으로 당선된 뒤 2004년 재임에 성공하였고 2008년 대통령에서 물러 난 뒤 다시 총리직을 역임하다가 2012 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였 다. 푸틴은 ‘위대한 러시아’, ‘강력한 러시 아 국가’라는 슬로건 아래 강력한 통치 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안정화와 사회 적 안정화를 꾀하였다. 권력을 중앙 정 부에 집중시키면서 석유·가스 등 전략 적 자원을 국유화하는 등 강력한 개발 독재식 모델을 택하여 산유국가들 중에 서 특별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현재 러시아는 다시 세계 초강대국으 로 변화하고 있다. 푸틴 정권은 체첸전 쟁과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국내 언 론이나 대기업 총수 등 중앙집권화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탄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부정적인 평가 도 받고 있다.


2. 정치 및 행정

강력한 대통령중심제의 정부
러시아의 국가 체제는 연방공화제이며, 정부 형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임기 6년, 재선 가능) 중심제로 운영되고 있다. 러시 아 대통령의 권력은 과거의 전제군주 차르만큼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12월 12일 국민투표를 통해 공식 채택된 신新헌법은 프랑스의 드골 헌법을 모방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대 폭 강화하고 소련 붕괴 이전에는 무소 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의회의 활동영역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즉 새 헌법은 하원인 두마에 입법권과 예산 심의권·조약 체결권 등을 부여하고 있 으나 상원인 연방회의의 승인을 반드 시 거치도록 규정하였다. 또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을 때만 이를 뒤집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통 령은 총선거 실시권은 물론 국회해산 권도 갖게 되어 있으며 의회의 대통령 에 대한 견제는 거의 불가능해져 탄핵 의 경우에 하원의원의 재적 3분의 2의 찬성으로 이를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은 총리를 포함한 정부 요직의 지명권, 임명권과 의회의 동의 없이 정 령(대통령포고령)을 발포하는 권한을 가져 군대와 국가 안전 보장 회의의장을 겸 한다.


연방회의와 국가두마
러시아 연방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 격인 ‘연방회의(Federation Council)’와 하원 격인 ‘국가두마(State Duma)’로 구성돼 있 다. 연방회의와 국가두마 양원은 별 도로 회의를 개최하고 독자적으로 권 한을 행사한다. ‘연방회의’는 외교정 책에 관한 권한을 가지며 ‘국가두마’ 는 행정부 견제 및 입법 권한을 가진 다. 연방회의는 임기가 2년이고 83개 의 연방주체에서 2명씩(지방의회, 행정부 대표 각 1명)선출되는 166명으로 구성되 며, 국가두마는 임기가 4년이고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450명 으로 구성된다.

 


행정구역 단위
러시아연방의 행정구역은 연방주체와 하부 행정단위에 따라 나누어 볼 수 있다. 연방주체로 구분하면 21개의 공 화국(respublika), 9개의 지방(krai), 46개 의 주(oblast), 1개의 자치주(avtonomnaya oblast), 4개의 자치관구(okrug), 2개의 연 방특별시(gorod federalnogo znacheniya - 모스 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총 83개이며, 하 부 행정단위로는 1,834개의 지구(Ration) 및 1,028개의 시로 분류할 수 있다.

 

21개 공화국은 독자적인 헌법, 의회, 내각 및 자체 언어를 보유하지만 독 립국가로서의 지위는 인정되지 않는 다. 자치주는 과거 5개가 있었으나 4 개는 공화국으로 승격되고 현재는 예 브레이(유태인) 자치주만 존재하며, 독 자적인 헌법, 최고회의, 내각 등은 보 유하지 못하나 문화, 언어 및 일부 경 제적 자치권은 허용된다.

 


3. 경제

 

과거 소련의 경제는 광업과 야금업, 중 공업 분야의 급속한 발전, 철도망의 확장과 다량의 에너지 공급 등이 자랑 할 만한 성과로 꼽혔다. 특히 1960년 대에 원유·천연 가스 생산이나 전력, 화공업 등 기간산업의 성장과 함께 산 업 생산물의 다양화가 두드러졌다. 그 러나 70~80년대에 소련의 경제는 전 체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 다. 소련의 계획경제는 소련 붕괴의 주 요 원인 중 하나였다. 중공업, 우주항 공기술 그리고 군수산업생산기술의 발 전에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와 경공업 분야의 기술 은 현저히 떨어졌다. 생활에 필요한 물 건은 수량이 너무 적어서 상점 앞에 길 게 줄을 서거나 뒷돈을 주고 사야 했 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경제는 중 앙 계획경제에서 보다 시장 기능을 중시 한 경제로의 이행이라는 큰 변화를 경 험하면서 1990년대에는 에너지 부문 및 군사 관련 부서 이외의 많은 국영 기업이 민영화됐다. 그러나 페레스트로 이카가 시작되자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상승, 실업문제, 생산기반 와해를 겪었 다. 자유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국영(국유)기업의 무분별한 민영화로 권 력층의 일부가 재벌(올리가르흐)이 되었지 만 대개의 일반인들은 가장 기본적인 생계조차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었다. 하지만 2000년부터 러시아는 매 년 플러스 성장률을 보였고 2004년 기 준 외환보유고가 800억 달러를 넘어섰 다. 국가신용도와 외국인투자가 높아 졌으며, 무역수지 흑자, 외채, 러시아로 유입되는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엄청난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2012 년 기준 러시아 경제는 국내 총생산(GDP) 이 세계 9위, 구매력 평가 환산으로는 세계 6위의 규모를 가진다. 러시아는 풍부한 석유, 천연 가스, 석탄, 귀금속 자원이 있고 세계 유수의 곡물 생산 및 수출국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나누고 있는 11 개의 경제권은 유럽의 북부, 북서부, 중부, 볼가~뱌트카 강, 중부흑토(중앙 체르노젬 지역), 카프카스 북부, 볼가~우 랄 강 권역이며, 아시아의 시베리아 서 부, 시베리아 동부, 극동권이다. 러시 아는 막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광물자원이 매장 되어 있어 현대 산업에 필요한 거의 모 든 원자재를 국내에서 자급할 수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석유, 천연 가스 생 산 국가로 손꼽히는데, 생산량의 5분의 4 이상이 시베리아 지역, 특히 서시베 리아의 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거 대한 유전에서 채취된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연료자원의 대부분은 전력 생산에 이용되는데, 전력 생산량의 3 분의 2가 화력발전으로 얻어지지만 수 력발전을 통해서도 많은 전력을 생산 하고 있으며, 볼가·카마·오브·예니세 이·앙가라 강 등에 대규모의 수력발전 소가 있다. 체르노빌 사건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사업이 크게 위축되기도 했지만, 러시아 내에는 원자력 발전소 가 많이 있다.

 

러시아의 수송체계에 있어서 커다란 장 애요인은 광활한 국토와 원자재나 식품 의 생산지를 소비자와 분리시키고 있는 머나먼 지역적 격차이다. 그 결과 철도 가 계속해서 가장 주요한 수송수단으 로 이용되고 있는데, 전국 화물수송량 의 약 90%(송유관을 포함시킬 경우에는 60%), 여 객수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의 2012년 교역액은 224.5억불로 전년 동기(211.6억불) 대비 6.1%가 증가하였다. 러시아로의 수출은 111억불로 전년 대비 7.7%가 증가했고, 수입은 113.5억불로 전년 대비 4.6%가 증가하여, 무역수지는 2.6억불 적자(전년 5.5억불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기준으 로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수출 대상국 및 12위 수입 대상국이며, 2011년(수출 11 위, 수입 13위)과 대비하여 교역 위상이 높 아졌다. 유럽 경제 위기로 인해 2012년 우리나라 대유럽 수출이 감소하는 등 교역 여건이 불리한 가운데 대러 수출 은 상대적인 호조를 보이고 있다.

 


4. 민족과 종교

러시아의 민족 분포와 정책
러시아는 다민족국가이며 다민족문화 의 나라다. 다양한 민족을 포함한 국 가로서 각각의 민족적 특성이 서로 어 우러져 유라시아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유럽과 아시아의 마인드와 관습을 가 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는 176개 민 족들이 모여 산다. 이들의 숫자와 언 어, 거주지역, 전통, 종교, 관습, 생활 양식이 서로 다르다. 러시아는 인종학 적으로도 매우 다양하다. 가장 뚜렷하 게 인종의 차이가 나는 민족은 백인인 슬라브계와 황인(몽골계)인 아시아의 소 수민족들이다. 반면에 카프카스지역의 민족들은 백인이지만 역사적으로 중동 과 로마, 터키, 이란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민족정책 은 모든 민족과 인종간의 평화로운 공 존을 목적으로 한다.

 

러시아를 떠나면 바깥사람들이 러시아 라는 국가의 시민을 골고루 러시아 사 람(Russian)이라고 부른다. 러시아 내에서 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 내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유의 ‘러시아인’(류스키, Russkii) 과 ‘러시아 시민’(로씨야닌, Rossiyanin)을 구 별한다.

 

그 차이 때문에 러시아 사람이 아닌 러시아 시민이 외국사람으로부터 “Are you Russian? 선생님 러시아 사람인 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당연히 아 니라고 답변해 버리기 때문에 애매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민족들 중 1억 2천만 명의 러시 아 사람들은 곳곳에 살고 있다. 우크 라이나 사람과 벨라루시 사람은 같은 슬라브계이므로 러시아 사람과 여러 모로 매우 흡사하다. 터키계족으로는 타타르족이 숫자가 제일 많다. 타타르 인과 이웃인 바슈키르족은 이슬람교도 다. 이슬람교를 믿는 민족은 카프카스 지역의 수많은 소수민족이다. 볼가강 하류에 살고 있는 몽골계 칼뮈크Kalmyk 족과 동시베리아 남쪽의 터키계 트바 Tuva족과 몽골계 부랴트Buryat족은 모두 불교 신자다. 그 외 시베리아 전 영토 에 분포돼 있는 서로 다른 소수민족들 은 대부분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다양한 형태로 샤머니즘의 종교적 전 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종교 지형
러시아는 세계의 모든 종교가 모여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소련시대 때 정부는 종교를 근절하려 했지만 국민 들은 가능하면 교회나 절을 찾거나 종교 축일을 기념하려고 노력했다. 기 독교와 이슬람 외에도 0.7% 정도의 불교신자가 있다. 2012 년8월의 조 사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의 종교와 각 종교 신자 숫자는 다음과 같다.



자연신과 조상신 신앙
고대슬라브인들은 자연의 정령을 믿었 다. 이유는 자연환경과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 어두컴컴한 숲과 넓은 호수와 강, 끝없는 광야는 자연에 대 한 외경심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으 며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히 정 령의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 한 신화적 이미지는 교회의 영향 아 래서 마귀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자연의 정령, 자연신과 조상 신 등에 대한 신앙, 즉 다신교적 민간 토속신앙은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에 서 볼 수 있다. 그 신앙은 바로 샤머 니즘이다. 샤머니즘이라는 말은 샤먼 에서 나왔는데 샤먼(아는 사람이라는 의미) 은 치유자이자 제주이며, 병을 고치 고, 공동의 제사를 주관하며, 죽은 자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 외, 시베리아의 터키계, 몽골계, 퉁구스계 민족들이 숭배하는 신앙의 특징은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 든 것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다 혼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존 재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애 니미즘은 신이 하나가 아닌 수없이 많 다고 믿는 다신교의 뿌리, 원시 종교 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의 다신교도 원시 시대의 애니미즘에 그 뿌리가 있다.

 


5. 러시아의 문화

 

러시아인의 성격
러시아인들은 특이하다. 아마도 세계 에서 유일하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찾고 찾다가 결국은 답을 못 찾 는 민족은 러시아인들 외에는 없을 것 이다. 이들은 함께 뭉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정서를 특징으로 갖고 있 다. 또한 밖의 세상이나 사람들에 대한 폐쇄성이 있다. 친한 사람이 아니면 낯 선 이에게 미소를 짓는 것도 드물고 인 사말도 안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똑 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동일 한 가치관과 생활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개인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 사람들의 ‘한’에 가까운 우울증 상태에 쉽게 빠지는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민 족 성격에 미치는 영향의 뿌리가 아마 도 혹독한 기후 그리고 오랜 독재정치 적 전통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이 자랑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력과 잠 재력이다. 한국 사람과 또 하나의 비슷 한 점이 있는데, 러시아인들은 자신의 문제들을 재빨리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의 강점은 유머감 각이다. 만나면 재미있는 이야기나 일 화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다. 특히 자유 로운 여론이 불가능한 소련시대에 러 시아인들은 자기 아파트 부엌에 앉아 서 보드카를 마시면서 일화(joke, anecdote) 를 서로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일화 의 제목은 보드카, 다차(시골 별장 겸 농장), 처녀와 총각, 신혼부부, 장모와 사위, 연인, 타 민족, 정치, 경제, 신新러시아 인 등까지 다양하다.

 

브레즈네프(구 소련 시대 때 공산당 총비서) 가 부활절 때 크레믈린 궁으로 걸어가다가 만난 한 사람이 “레오니드 일리치, 흐리스토 스 바스크레스”(‘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라는 뜻의 그 날의 보통 인사말)라고 하자 브레즈네프는 말없이 지나갔다. 가다가 또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도 “레오니드 일 리치, 흐리스토스 바스크레스” 하고 인사말 을 하니까, 브레즈네프는 “고맙다. 이미 보 고 받았다”라고 대답했다.

 

러시아인들은 가정과 자녀, 교육, 임금 과 연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즐 긴다. 세시풍속으로는 새해 맞이, 성탄 절, 부활절, 마슬레니짜(사육제) 등이 있 고, 소련식 기념일은 승전 기념일, 여 성의 날이 있다. 취미로는 운동과 레포 츠, 낚시, 숲에서 딸기와 버섯 따기, 다 차, 바냐 등이 있다. 특히 바냐(한증탕, 사 우나)가 인기가 높다.




러시아의 음식문화
러시아인들의 주식은 유럽과 마찬가지 로 육류, 파스타 류, 채소, 빵류, 밀가 루 음식이 있다. 그들의 음식문화에 고 유한 음식과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들 어온 음식이 있고 또 다민족국가인 러 시아의 다양한 민족문화가 들어와서 아시아나 카프카스지역의 요리도 맛있 게 먹는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러시아의 한 인(고려사람)들의 음식문화가 널리 퍼져 폭 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재래시 장에 가보면 짐차(김치), 마르꼽차(당근채), 마늘장아찌, 고추장아찌 같은 한국식 의 먹거리를 파는 아줌마들이 많다. 음료수로는 차(홍차) 마시는 문화가 발달 했고 술은 유명한 보드카가 있다.


러시아의 예술과 문학
러시아 문학에서는 사회문제와 윤리, 도 덕의 문제가 주요 테마로 되어 있다. 17세기 말~18세기 초에 근대문학이 생기면서 지금 러시아인들이 사용하 는 현대 러시아어도 같이 생겼다. 바로 그 때 최대의 시인, 국민문학의 창시자 알랙산드르 푸쉬킨은 러시아 시문학의 걸작품인 8장의 운문서사시 ‘예브게니 오네긴’과 많은 서정시를 썼다.

 

18~19 세기에 레르몬토프, 고골, 투르 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를 비 롯한 많은 소설가들과 시인들은 훌륭 한 작품을 썼다. 러시아 사람들은 건축, 미술, 음악 그리고 발레에도 많은 업적을 쌓은 탁월한 인물들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사람들은 일제시대 때부터 러시아 의 문학과 음악 그리고 연극에 대한 꾸 준한 관심과 호기심을 보여 주었다. 많 은 지식인들은 푸쉬킨과 톨스토이, 체 호프,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읽었고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무소르그 스키의 음악을 듣고 감성을 키워왔다.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50~60년대에 러 시아의 민요 ‘카츄샤’, ‘스탠카 라진’, 80 년대 ‘모스크바 교외의 밤’, 최근에 드 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쓰인 ‘백학’ 과 알라 푸가쵸바의 ‘백만 송이 장미’ 등도 잘 알려진 곡들이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조선 효종 때의 나선 정벌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 시에는 러시아를 아라사라고 불렀으 며 청나라군과 같이 싸운 경험이 있었 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이 한반도에 대 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세 기 후반부터이다. 조선과 제정 러시아 는 1884년에 조·러 통상 조약을 통해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그 이후에 제정 러시아가 일본 제국, 청나라와 함께 조 선에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한 러 관계가 시작되었다. 19세기말에 대 한제국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에 피신 하기 시작(1896년 아관파천)하면서 러시아는 조선에 강한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였 다. 하지만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 발하고 사실상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 한 상태에서 한일간에 ‘한일의정서’가 체결(1904. 2. 23)되었으며, 대한제국은 5월 18일자 조칙으로 한-러 간 체결되었 던 모든 조약과 러시아인에 양도하였 던 이권도 모두 폐기한다고 선언하므 로써 러시아와의 국교는 단절되었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 맺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 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였다.

 

소련시대 때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적 대적이었다. 1980년대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은 상당히 변화하였다.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과정과 관련이 있는지 모 른다. 소련은 서울에서 개최된 1988 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 55 개로 종합 1위를 차지하였다. 1990년 9월 30일 한-소 국교 정상화를 이룩 하였다. 한-소 수교시에 대한민국은 소련에 30억불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엔 경 제, 문화, 우주개발, 정치에서 대폭적 인 협력을 이루고 있다.

 

지난 20 여년간 한러간 교역량이 52배 증가했다. 2009년 4월 11일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가스공사 통영생산기지를 통해 국내에 최초로 도입되었다. 2010 년 1월 GS칼텍스는 ESPO 75만 배럴 을 수입했다. 한국 최초의 러시아산 원 유 도입이다. 2010년 6월 3일 대우조 선해양이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에 기존의 군함 건조용 쯔베즈다 조선 소를 확충하여 상선, 해양, 특수선 분 야를 모두 갖춘 러시아 최대 규모 조선 소를 설립키로 합의했다. 2010년 9월 21일 현대자동차가 15만대 규모인 러 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했 다. 러시아 사람들이 2000년대 후반부 터 의료관광의 목적으로 대한민국을 많이 방문하고 있다.




슬라브인들의 신神

●트리글라브(Triglav)

기독교 전래 이전 슬라브인들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신들을 섬겼다. 옛 기록은 적지만 고대 슬라브족이 숭배했던 신은 전부 19명이었다고 추측한다. 이들 중에 트리글라브(Triglav)는 따로 주 목을 끈다. 트리글라브라는 말 은 말 그대로 ‘3개의 머리를 가 진 신’이라는 의미인데 이에 대 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먼 저 신은 하나인데 여러 모양으 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 입장 과 트리글라브는 주요 3명의 신을 대표하는 우상이라는 견 해, 그리고 또 하나는 삼계(하 늘과 땅 그리고 지하세계)를 다 스리는 슬라브조의 최고의 신 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뻬룬Perun과 볼로스

Volos 키예프의 올래그 공이 뻬룬(Perun)과 볼로스 Volos(벨레스 Veles)를 그들의 신으로 도입한 것은 907년의 일이었으며 뻬룬은 주로 동슬라브의 동남부지역에서 숭배되었고 볼로스는 북부지 역에서 숭배되었다. 이후 뻬룬을 지배신으로 모 시고자 블라다미르 대공은 980년에 궁정 바깥 의 언덕에 우상들을 모아두는 만신전을 만들고 거기에 은으로 된 머리와 황금수염을 가진 뻬룬 을 위시하여 호르스Hors, 다쥐보그Dazhdbog, 스 뜨리보그Stribog, 세마르글Semargl 그리고 마꼬쉬 Makosh의 목상을 만들었다. 뻬룬은 다른 부족들 의 신 가운데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 으며 키예프는 동슬라브의 중심지가 되었다. 뻬룬은 블라다미르 만신전에서 가장 우두머리 신이었고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신이었으며 도끼로 상징되는 전쟁의 신이기도 했다. 호르스 와 다쥐보그는 태양의 신들이었는데 다쥐보그 는 또한 축복의 신이며 신성한 대장장이의 역할 을 하는 일종의 슬라브 판 태양의 신, 스바로그 Svarog의 아들이기도 했다. 스뜨리보그는 바 람과 폭풍우, 불화의 신으로 12세기의 서사시 < 이고리 원정기>는 바람을 그의 손자로 언급하 고 있다. 호르스와 스뜨리보그, 세마르글은 날 개 달린 개이며 씨앗과 새로운 사냥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마꼬쉬는 신들 가운데서 언급 된 유일한 여신이다. 그녀의 이름이 습기를 의미 하는 것은 아마도 그녀는 축축한 어머니의 대지 라는 대중의 전통을 의인화시킨 또 다른 명칭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마꼬쉬는 동슬라브의 위대한 어머니 여신으로 풍요와 자비 그리고 습 기의 여신이며 여성의 일과 처녀들의 운명의 수 호자였다.



러시아의 명소들

●모스크바

올해로 탄생 866주년을 맞이하는 고도시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제정러시아 의 찬란한 모습과 현대적 모습을 지 니고 있는 러시아의 독특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도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설립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713년 모스크바에 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200여 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으며 제정 러시아의 가장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흑해와 소치

흑해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그루지아 와 접하고 터키,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경계를 이루는 거대한 내해이다. 소치 는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두고 한국의 평창과 경합을 벌였던 도시로 한국사람에게 얼마간 친숙해진 도시다.


●바이칼 호수

러시아 동시베리아 남부 부랴트 공화 국과 이르쿠츠크 주에 걸쳐진 길이 636km, 최대넓이 79,6km, 최대 수 심 1642m, 해안길이 2000km에 달 하는 세계의 가장 깊은 호수이며 유 라시아의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  출처 월간개벽 2013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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