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와 세계문화

유럽 문화의 원류, 신神들의 나라 그리스

문계석

2013.07.03 | 조회 10533


오늘날 대부분의 서양문화는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들의 나라, 민주주의 기 원, 서양 학문의 발상지, 서양 예술문화의 원조로 불리우는 나라이면서 올림픽Olympic의 성 화聖火가 채화되는 올림포스 산이 있는 곳이 그리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럽 금융위기 의 영향을 받아 국가 재정이 파산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지금 어쩌면 그리스인들은 영광 스럽고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의 후광을 업고서 다시 떠오를 내일의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도 모른다. 이제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보자.



1. 엘라스 공화국, 그리스Greece

지정학적 환경
그리스는 유럽의 남부에 위치한 발칸반도 남쪽 끝에 위치해 있다. 그리스의 북쪽은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북동쪽 끝에는 마리치강을 사이에 두고 터키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는 3면의 바다에 접해 있어서 자그 마치 1400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쪽 바다에는 지중해의 일부인 에게 해가 위치해 있고, 거기에는 노이스트에게 제도, 스포라테스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도데카네스 제도 가 있다. 서쪽 바다에는 이오니아 해가 위 치해 있으며, 거기에는 이오니아 제도가 있다. 남서쪽 바다에는 펠레폰네소스 반도, 남쪽바다에는 크레타 섬이 있다.



그리스는 국토의 총 면적이 약 131,957㎢ 에 지나지 않는 그리 크지 않은 나라이지 만, 산지가 많고 평야가 적으며 곳곳에 분 지가 있어 고대 도시국가 형태인 폴리스 polis가 발달한 지리적 조건이 되었다. 그리 스 전체의 5분의 4가 산악지대이기 때문 에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산악지형이 많 은 곳이다.

그리스의 기후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 분할 수 있다. 지중해성 기후와 고산 및 온대성 기후이다. 그리스의 서부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은 온난 다습하지만 여름엔 고온 건조하다. 하지만 해안지역은 온도차가 그리 많지 않다. 핀 도스 산맥과 그리스 북서부 지역은 고산 기온이 지배적이며, 겨울에 는 추위가 심한 대륙성 기 후이고, 여름에는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지역이다. 남부 및 도서 지방은 여름에 아 주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난다. 그리스의 중심도 시 아테네는 지중해성 기후 와 온대성 기후 사이에 끼어 있다. 그래서 아테네는 낮에는 엄청나게 더운 반면 밤에 는 시원해서 야외생활과 야간 생활이 발 달되어 있다.

그리스의 수도는 아티키 지방에 속해 있 는 아테네Athens이고, 이외에 테살로니카 Thessalonica, 파트라스Patras, 세레스Serres, 이 라클리오Iraklion, 볼로스Volos, 이오안니나 Ioannina, 카발라Kavala, 로도스Rhodes, 라리사 Larisa 등 13개 이상의 주요 도시가 형성되 어 있다.


그리스인의 국명, ‘엘라다’
오늘날의 그리스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무 려 2,000년 이상이나 이민족의 지배를 받다 가 1822년에 터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출범하였다. 대내외적으로 수없이 많은 독립 전쟁을 치름으로써 이루어진 국가이다. 국 가의 정식 명칭은 일반적으로 영어를 사용 하여 ‘그리스Greece 공화국’이라 하는데, 그리 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민족적 자부심 을 담아 ‘엘라스 공화국(Elliniki Dimokratia ; The Hellenic Republic)’, 줄여서 엘라다(hellada)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그들 스스로가 엘라스Hellas(고대 그리스 어로는 ‘헬라스Ελλ??’, 현대 그리스어로는 ‘엘라스Ελλ??’나 ‘엘라 다Ελλ?δα’, 라틴어로는 그라이키아Graecia) 사람이라 부 른 데서 연유한다. 엘라스(헬라스)인들은 고 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손자 헬렌Hellen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여긴 다. 그리스 사람들은 원래 스스로를 아카이 아Achaia인이라 칭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로 마와 터키의 식민통치 지배를 받았다. 그 과 정에서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을 ‘노예’란 의 미를 담아 ‘그리크Greek’라고 불렀고, 터키 역 시 경멸의 의미를 담아 ‘그레코스Grecos’라고 불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그 리스’란 국명에 대해 그리스인들은 거부감이 크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그리스Greece’로 부르지 않고 민족적 자부심 을 대변해 주는 ‘엘라스Hellas’, ‘엘라다Hellada’ 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2. 그리스의 역사

역사의 기원
그리스의 역사는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 가 보면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서 남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고대 그리스 문명에 뿌리 를 두고 있다. 보통 ‘고대 그리스 문명’ 시 기라 하면 청동기 시대인 미노스 문명(기원 전 3650~1170), 키클라데스 문명(기원전 3300~2000), 미케네 문명(기원전 1600~1100)이 끝나고, 그리 스 암흑기가 시작되던 기원전 1,100년부 터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기원전 146년까지를 말한다.

북방의 도리아Doria인이 남하하여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그리스의 암흑기(기원전 1,100~750)를 거친 이 후, 그리스 지역에는 다른 나라의 침입, 타지역의 약탈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지리적 요충지와 군사적 중심지가 되는 곳에 여러 촌락의 부족들이 모여들 어 아테나이(Athenai: 아테네의 고대 그리스어), 스파 르타 등과 같은 일종의 ‘도시국가’인 폴리 스polis가 형성되었다. 폴리스는 본토에 만 200여 곳이 있었고, 에게 해와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 일대에 건설된 식민지까 지 합치면 1,000여 곳이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폴리스 중 하나인 아테네는 정치 적으로는 민주정치를 발전시켰으며 경제 적으로는 상업과 해상무역에 주력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폴리스 스파르타는 군국주 의적 정치체제를 취했으며 상업보다는 농 업에 치중했다. 이 시기의 고대 그리스인 들은 동족의식을 가지고 부분적으로는 결 합을 이루었으나, 폴리스를 중심으로 하 는 독립성이 강하여 통일된 국가를 형성 하려는 뜻이 없었고 필요시 여러 폴리스 들 간에 동맹을 맺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 러한 도시국가 체제는 당시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거대한 제국 또는 왕국 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다른 그리스만의 독 특한 특징이다.


그리스 국가의 출발, 폴리스 연맹
실질적인 그리스 국가의 기원은 아테네 Athens와 스파르타Sparta가 오리엔트를 통일 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 리하면서 고대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하는 폴리스의 연맹체(기원전 478년에 맺은 델로스 동맹)를 결성한 때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페르시아 전쟁 승리의 주역인 아테네는 델 로스 동맹의 맹주로써 번영을 누렸는데,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겼던 스파르타는 역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은 뒤 아테네와 대립하였다. 그 결과로 일어난 것이 아테 네와 스파르타와의 펠레폰네소스 전쟁(기원 전 431년)이었고 오랜 전투(약 28년간) 끝에 스파 르타가 승리하여 그리스의 패권자로 등장 하였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쇠 약해진 스파르타는 결국 테베Thebes에게 패 권을 내주었고, 이어서 북방의 마케도니아 에게 정복당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 왕은 그리스의 폴리스를 완전히 진압하여 마케도니아에 귀속시켰으며,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인더스 강까지 진출했다.



로마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 방 원정길에 나섰다가 죽자 아테나이는 독 립하였으나 폴리스들 간의 끊임없는 내분 으로 분열되었다. 이후 로마Roma가 융성하 여 기원전 146년에 그리스 전역을 로마에 편입하였다. 로마에 편입된 그리스는 로마 제국이 동·서로 갈리자 동로마제국, 즉 비 잔티움 제국Byzantium Empire(330~1453)으로 넘어 가고, 이후에 1453년 오스만 투르크제국 이 일어나자 그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그리 스는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근대 그리스의 독립과 왕정시대
그리스의 독립전쟁은 1821년부터 시작한 다. 그리스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에 대항 하여 1829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8년 동 안 독립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1827 년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귀족 출신인 칸포디스트리아스가 새 공화국의 통치자 로 선출되었으며, 그 결과 그리스 국가는 런던 의정서로 인정을 받아 신생국으로 탄 생하게 됐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 스 국가의 전신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의 통치자가 암살당하자 강대국들은 그리스 에 왕정을 세우고 오톤을 국왕으로 옹립 하였고, 이에 1843년 반란이 일어났으며, 1863년에 다시 덴마크의 빌헬름 공이 그 리스의 왕에 오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는 영토확장이 이루어졌다. 독립 당시 그리스의 영토는 아테나이 일대에만 국한되었으나, 1881년 에 테살리아 지방, 1912년 마케도니아 및 이피로스 지방, 1913년에 크리티 섬을 병 합하여 영토가 넓어지게 된다.


공화정시대와 군정시대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그리스는 터키 민족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로잔 조약으로 두 나라 사이에 대량의 인 구교환이 이루어졌고, 1923년부터 12년 간 공화제가 실시되었다. 1940년에는 파시 스트 이탈리아가 그리스에 항복을 요구하 여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이 초래됐으며, 이 전투로 그리스는 독일군의 손에 떨어졌 으나 독일 점령군은 그리스 저항군 때문에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1947년 그리스 왕 정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반란군이 일어났 으며, 이후 그리스는 20여년간 좌우파간 의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기도 했다.

1967년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 하자 우파 세력을 등에 업은 요르요스 파파 도풀로스 장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 타를 일으켰으며, 1973년 스스로 그리스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74년 국민투표 를 통해 정식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1975년 에 민주주의 공화국 헌법이 발효되었다.


최근의 정세
그리스는 군사정권(1967~1974) 초기 시절 서 유럽 제국으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 은 탓에 경제원조를 받지 못하였지만, 점 차 정치가 안정이 되면서 주변국들의 태도 도 완화되었고 특히 구소련과의 친근관계 를 고려해서 서방 각국은 적극적으로 그리 스를 원조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1978년 그리스-터키 정상회담에서는 양 국이 우호관계 회복에 합의했고, 1980년 10월에는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복귀했다. 또한 기지협정 에 의하여 미국의 통신기지도 설치되었고, 1981년에는 유럽연합(EU) 10번째 정회원국이 되었다. 그리스는 2001년 1월 유로화를 채택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도 성공적 으로 치르면서 정치안정과 함께 순조로운 발전을 보이는 듯했으나, 관광산업에 대 한 높은 의존도와 재정 관리의 불투명성, 2008년도 미국 금융위기의 여파, 유로화 를 뒷받침할 제도 미비 등으로 재정적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의 하나로 전락했다. 결 국 2010년 5월 2일 유럽연합과 국제통화 기금(IMF)은 그리스에 총 1,100억 유로(1,460 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합의하였 다. 이에 대해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의 지원조건인 재정긴축 대책의 일환으로 그 동안 방만하게 분할, 운용되어 오던 지방 자치단체 수를 대폭 줄이는 지방자치체 통 합추진법을 마련하였으나 각 지방자치 단 체장과 산하 공무원들이 격렬히 반발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경제위기를 둘러싼 정국 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3. 그리스의 정치체제와 행정체제

정치체제
1975년 6월에 제정된 그리스의 헌법에 따 르면 그리스는 대통령 중심의 의원내각제 공 화국으로서, 의회가 의원 3분의 2의 찬성 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국가 원수의 권 한을 부여하지만 실제로는 정부수반인 국 무총리와 내각이 정치의 중심적인 역할 을 한다. 대통령은 의례적인 직무와 더불 어 약간의 행정 및 입법 기능을 가질 뿐이 며, 현재 국가원수는 2010년 3월에 연임(임 기 5년)에 성공한 카롤로스 파풀리아스(Karolos Papoulias) 대통령이다.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로서 단원제 국회 의 의원 정수는 300명이고 임기는 4년이 다. 내각은 국무총리의 제청에 따라 대통 령이 임명하는 각 행정부서의 장관으로 구 성되는데, 현재 총리는 2012년 6월 20일 에 취임한 신민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Antonis Samaras이다. 1974년 군사정권에서 민 정으로의 복귀 이후 그리스의 정치는 중도 우파 성향의 신민주당(ND)과 중도사회주의 정당인 범그리스사회당(PASOK)이라는 양대 정당이 주도해 왔으며, 기타 급진좌파연합 (SYRIZA), 그리스공산당(KKE), 대중정교회연대 (LAOS) 등의 정당들이 포진해 있다. 2012년 6월에 실시된 재총선에서 제1당인 ‘신민주 당(ND)’이 사회당 등과 연합해 내각구성에 합의하므로써 집권당이 되었고 사마라스 가 총리로 공식 임명되었다.

사법부는 대법원(민ㆍ형사 최고법원), 국사원(행정최 고법원), 고등법원, 하급법원(민사, 형사 및 행정법원으 로 구분)의 3심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법관은 대법원장의 조언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 며 종신제이다.


행정체제
그리스의 행정구역은 13개의 지방(Region, 그리 스어 περιφ?ρεια)과 1개의 자치 지방(Mount Athos: 그리 스 정교회의 성지인 아토스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13 개 지방 중 9개 지방은 육지에 위치해 있 고, 4개 지방은 섬에 위치해 있다. 13개 지 방 안에는 51개 도(Prefecture, 그리스어 νομο??)가 있 고, 51개 도 안에는 900개의 시(Municipality, 그리스어 δ?μο?)와 133개 지역(Community, 그리스어 κοιν?νητα)이 있다.



4. 민족, 언어 및 종교

민족의 구성
그리스 헬레네스Hellenes 민족은 크게 다섯 부류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원 주민인 펠라스고이Pelasgoi족의 후손들, 북방 의 아카이아Achaia족이 들어와 원주민을 밀 어내고 이룩했던 고대 미케네 문명의 후 손들, 크레타 문명을 일으킨 미노아Minoa인 의 후손들, 재차 북방에서 밀고 들어온 도 리아Doria인의 후손들은 그리스 민족의 주 축을 이루고 있고, 주변국들로부터 유입된 그리스인은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20세기에 많은 그리스인들은 오스트레 일리아, 독일, 영국, 미국 등지로 이민을 가서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離散) 인구는 거 의 6백만에 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80 년대에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면서 오히 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주자들이 증가 하게 됐다. 2001년 그리스 정부의 통계 추산에 의하면 그리스의 총 인구는, 남성 이 5,427,682명, 여성은 5,536,338명으 로 대략 10,964,020명이다. 그러나 알바 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조지아, 러시 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지에서 온 이민 자들이 그리스 혈통이지만 시민권이 없 이 거주하고 있어서 그리스의 정확한 인 구수를 통계 내기란 쉽지가 않다.


언어
그리스는 토착인구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리스어가 중심으로 구사된다. 물론 관 광지와 호텔에서는 독일어, 영어, 프랑스 어도 통용되고 있지만, 트라키아에는 터 기어, 불가리아어, 루마니아어가 극히 부 분적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아테네 근교 에는 알바니아어를 구사하는 이들도 소 수 있다. 그리스 북쪽 접경에는 인종적 으로는 그리스인에 속하지만 언어학적으 로 슬라브어를 쓰는 집단도 있다. 그리스 어를 사용하는 인구 중에도 폰토스 그리 스어를 쓰는 집단도 있는데, 오스만 터 키 제국의 박해를 받아 소아시아에서 이 주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소수의 집단에 서 사용되어 왔던 다른 언어는 대부분 그 리스어의 사용인구와 동화되어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종교
그리스가 미케네 문명의 화려한 영웅담 을 배경으로 한 신화 역사를 보유하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의 대부분은 조상들이 믿었던 많은 신들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교에서 연유한 그리스 정교를 신 앙하고 있다. 그 까닭은 그리스의 도시국 가 연맹체인 폴리스가 붕괴된 후 몇천년 동안 이민족의 통치, 즉 그리스도교를 국 교로 정한 로마의 지배, 비잔틴 제국의 지배,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지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인 가운데 98%가 그리스 정교를 신봉하고 있고, 나머지는 가톨릭, 개신교(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 유 태교,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지방에 살 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신앙심이 매 우 깊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세속적 인 것에 더 관심이 많다.


5. 그리스의 대외 관계

주변국과의 갈등
그리스는 흑해경제협력기구의 창립 회원 국으로 선진국에 속한다. 탄탄한 외교관계 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1952년에는 북 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고, 1961년 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되었으며, 1981년에는 유럽연합EU, 2001 년에는 유럽경제통화동맹에 동참했으며, 2005년에는 유럽우주국ESA에 가입했다.

그러나 그리스는 주변국들과의 갈등과 대 립에 직면해 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키 프로스와 에게해를 두고 터키Turkey와의 대 립과 외교적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인이 1453년부터 지 배를 받다가 독립을 선언한 1822년까지 몇백년 동안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식민지 였기 때문에, 아마도 터키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데서 기인한 것 으로 보인다. 또한 키프로스 공화국의 영토 에서 터키계의 북방 키프로스와 그리스계 의 남방 키프로스들이 대립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그리스는 1950년 6·25 전쟁 때에 대한민 국의 우방으로 참전했다. 1961년에 대한 민국과 단독으로 정식 수교하였고, 한국 에 상주공관이 설립되었다. 1970년에 한 국과 문화협정, 1974년에 무역협정을 체 결하였으며, 1991년에는 서울에 주한상주 그리스대사관을 개설했다. 1994년에는 양 국간의 과학기술협력협정, 1995년에 항공 협정, 이중과세방지 협정 등을 체결했으 며, 2004년 그리스 정부는 우리나라를 주 요 협력대상국으로 선정하여 다양한 분야 에서 협력증진을 강화했다. 2004년은 그 리스와의 우호증진의 해였다. 반기문 외교 장관이 처음으로 그리스를 방문하였고, 그 해 8월에 개최된 올림픽에 대한민국 기업 이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되었다.




6. 그리스의 문화

서양 예술의 보고 그리스-헬레니즘 문화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는 서양 예술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서남아시아와 북아 프리카 전역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 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스 문화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최초로 동 서양 통일제국을 세웠을 때, 동서문화가 만나서 헬레니즘Hellenism(‘그리스와 같은 문화’라는 뜻)이라는 찬란한 예술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고 로마제국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 며, 로마인들은 지중해 지역과 유럽에 그 리스 문화를 발전하여 퍼뜨렸다. 그러므 로 그리스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는 서양 문화예술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 리스 문명은 언어, 정치, 교육제도, 철학, 과학, 예술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고 이 지 역들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 히 이슬람 황금시대(9~15세기)와 서유럽 르네 상스(14~16세기말)를 촉발시킨 원동력이 되었 다. 또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 에서 일어난 다양한 신고전주의 부활운 동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다.

그리스의 초기 미술은 기원전 7~5세기경 에 시작하는데, 아르카이크 시대라 불린 다. 이 시대의 미술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으로 인간의 이상적인 형 태를 중시했다. 미술작품으로는 인체의 구조적 표현에 주로 관심을 가졌으며, 소 조와 조각상이 유명하다. 대표적으로는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형제를 기리는 쿠로스(청년상)와 코레(소녀상)가 유명하다.

그리스 초기의 미술이 군주를 위한 것이 거나 과거에 전승되어왔던 신을 소재로 해서 나타났던 것과는 달리 기원전 5~4 세기경에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자체를 추구하면서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를 맞이 하게 된다. 예술적인 표현은 그들의 정서 에 맞는 자유로움과 이상적인 아름다움 을 추구했으며, 감정을 절제하는 인체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하려 했다. 조각 작품 으로는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과 페이 디아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장식은 서양예 술에서 가장 장중하고 장엄한 고전양식이 라 할 수 있다.

회화는 초기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인간상 을 묘사하는 것이 중심이다. 전성기에는 음영법에 따른 입체 묘사, 기하학적 원근 도법, 새로운 채색법 등을 창안하여 회화 에 적용했다. 그리고 건축양식으로는 인간 과 건축물을 조화시킨 점이 특징으로 나 타난다. 건축물 기둥의 원주양식을 볼 때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이 특징이 며, 이러한 특징은 후에 로마에 계승되어 서양건축의 고전양식을 이루게 된다.

헬레니즘 문화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오리 엔트 문화가 융합되면서 출현한 세계시민 적인 성격의 혼합문화이다. 기원전 4세기 경에 그리스의 북쪽에 위치한 마케도니아 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테네를 정복하 여 폴리스의 연맹체제를 붕괴시키고, 주변 의 여러 도시와 다른 국가들을 정복하고 통합하여 대제국을 세우게 된다. 이 과정 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정복한 도시와 국가에 그리스인들을 이주시켰고, 거기에 찬란하고 수준 높은 그리스의 학문과 예 술을 전파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헬레니 즘의 혼합문화가 발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롭게 발흥하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 는 아테네가 아니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 아와 시리아의 수도였던 안티오케아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정벌로 인해 그리스인들은 커다란 영향을 받아 세계적 인 시민사회로 변모되었고, 개방적이고 보 편적인 세계시민적 문화를 추구하기에 이 르렀다. 그들은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등, 동방 지역의 문화와 특성을 받아들여 사고의 지평을 크게 넓혔으며, 젊고 야망 있는 시민들은 동방에 있는 새로운 그리 스인의 제국으로 갔다. 심지어 아프가니스 탄, 파키스탄이 있는 그리스-박트리아 왕 국, 인도-그리스왕국까지도 이주하였던 것이다.

학문적인 측면에서 보면, 철학은 개인주의 사상으로 집약되고 있으며, 고전역학의 기 원은 유클리드Euclid(기원전 330년경 출생)의 기하 학이 전형이다. 또한 오리엔트 지역의 사 람들은 그리스 문화의 인간 중심적인 측 면을 흠모하여 예술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들은 풍부한 소재와 현실적으로 성숙해 진 표현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묘사에 대 한 보다 자유롭고 섬세한 포즈와 표정 및 감정을 격렬하고 화려하게 그려냈다. 인간 중심의 헬레니즘 예술 양식은 ‘밀로의 비 너스’, 리시포스의 ‘라오콘 군상’과 ‘죽어가 는 갈리아인과 그의 부인’등의 조각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던 헬레니 즘 예술은 로마로 유입되어 서양예술의 기 본적인 틀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양식 은 인도에 전해져 간다라gandhara 미술 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르네 상스 시대에 이르자 네오나르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인간중심의 사상을 바탕으 로 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부흥시키기도 하였던 것이다.


전통의상과 전통음식
고대 그리스 의상은 예술성을 기본으로 한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조화, 그리고 균 형을 중시하는 복식으로 자연스럽게 주름 을 살리고 허리선은 가슴 선 아래까지 높 이는 형태의 헐렁한 모습이다. 이러한 양 식은 로마로 계승되어 서양 복식의 기본형 이 되어왔다.

전통적인 의상은 키톤chition과 히마티온 himation, 클라미스chlamys가 있다. 키톤은 기 본적으로 주름이 아름답게 늘어지도록 하 는 의상으로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이 있 다. 도리아식은 모직물로 된 천을 사용하 고, 이오니아식은 마직물로 된 천을 사용 한다. 도리아식은 한 장의 큰 천을 접어 뒤 쪽이 올라가도록 양 어깨를 ‘파블라’라는 장식핀으로 여미고, 허리를 묶어 입었다. 이오니아식은 두 장의 천을 옆 솔기에서 꿰매 어깨에 맞춰 핀으로 손목까지 좁은 간격으로 여미고 허리부분은 묶는데, 허리 부분을 2~3겹으로 접어 묶어 주름이 많 이 생기도록 한다.

히마티온은 외출할 때 입는 망토와 같은 것으로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갖가지 방법 으로 몸에 걸쳐 입었다. 철학자들은 대체 로 히마티온만을 입기도 했다. 히마티온은 주로 천을 어깨에 두르고 길이는 땅 바닥 까지 닿는 것이 특징이다. 클라미스는 히 마티온이 변형된 것으로 키톤 위에 입는 짧은 망토이다. 주로 여행자들이나 군인이 입었다.

전통음식은 수블라키Souvlaki, 짜찌키Tzatziki, 그리스 샐러드Greek Salad가 대표적이다. 수 블라키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발전된 음식 으로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을 꼬치 에 꽂아 그릴에 구워 양파, 올리브, 토마 토 등과 함께 즐기는, 값이 싸고 평범한 전 통 요리이다. 그릴에 구웠기 때문에 느끼 함이 없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짜찌키 는 요쿠르트, 오이, 마늘, 허브, 식초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 우리의 김치와 같이 모 든 음식과 함께 매일 먹는다. 그리스 샐러 드는 주재료가 양상추이며, 토마토 조각, 오이, 피망, 적양파, 치즈에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그리스 전통 음식이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세계적인 관광문화
발칸반도의 남단에 위치해 있는 그리스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원래부터 해양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오 늘날 그리스는 경제적으로 볼 때 해운업 과 조선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대체 로 관광수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지 중해 연안에 위치한 온대성 기후와 그리스 만이 갖고 있는 지리적 풍토, 아테네와 테 살로니카, 파트라스, 세레스, 이라클리오, 볼로스, 이오안니나, 카발라, 로도스, 라 리사 그리고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유산은 그리스가 세계 관광명소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인위적-천연적인 요소를 제공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산지가 가장 많은 나라 로서 국토의 4/5가 산이나 구릉으로 되어 있고, 평지는 얼마 없다. 발칸반도의 중앙 부는 디나르 알프스 산맥의 연장인 핀도 스 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있고, 핀도스 산 맥에 위치한 스몰리카스 봉은 높이가 무려 2,637m나 된다. 핀도스 산맥은 여러 협곡 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많은 호수와 습지가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여기의 자연경 관은 정말로 일품이라 볼 수 있는 지역이 다. 특히 그리스 정교의 수도원이 많은 메 테오라 협곡은 관광객들에게 놀라운 경험 을 안겨주고, 비코스 아오스 협곡은 장대 한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에 스포츠 매니아 들의 인기 있는 행락지이다.

핀도스 산맥의 끝에 가서는 다시 동서의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트라키아 산지, 키 클라데스 산지 등의 고기 산지를 이룬다. 트라키아 산지 끝에는 그리스 최고봉을 이 루는 올림포스 산(2,917m)이 우뚝 서 있다. 올림포스 산에는 고대 그리스 신들의 제 왕인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고대 문화 유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등산객들에게는 아주 인기가 매우 높은 곳이 바로 여기이다.

키클라 산지는 여러 번 침강운동을 거듭 하여 안쪽으로 다도해를 이루게 되었고, 고기 산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에게해 에 이른 후 많은 군도를 이루게 된다. 군 도 끝에는 크레타 섬과 로도스 섬이 동서 방향으로 길게 누어있다. 그래서 그리스는 산악국이면서도 해안가 근처 여러 곳에 산 간 분지가 형성되어 작은 평야지대를 이룬 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그 리스는 아주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갖추게 되었고, 고대에는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형 태가 발달하였으며, 해양국으로서의 면모 를 일찍부터 갖추던 것이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 스 신전군神殿群과 그 남쪽의 디오니소스극 장, 북쪽의 아고라 등의 유적군이 유명하 다. 동쪽의 제우스신전과 6각탑이 있는 아 고라는 로마시대의 유적이며, 근교의 수니 온곶, 델포이, 코린토스 및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 및 에게해의 여러 섬도 주 요 관광지이다.



신화와 함께해 온 그리스인들의 삶
그리스를 가본 사람은 익히 알고 있듯이, 산과 들, 섬 등에 세워진 여러 신전들을 목격하게 된다. 올 림포스의 제우스 신전,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파 르테논 신전, 아테네 신전, 테세이온 신전, 코린 트 지방의 아폴로 신전, 삼모스 섬의 헤라 신전 등 곳곳에 신들을 모신 신전이 허다하다. 서양에서 그리스인들처럼 신들을 잘 모신 민족이 또 어디 있으랴! 그리스는 신들의 나라이다. 이러한 신전 들은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리스의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파 해낼 수 있는 진실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의 신화 가 신본주의神本主義가 아니라 인본주의人本主義 사 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의 신화 에서 그려지는 신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 도 아니고 절대자도 아니다. 죽음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인간과 다름없는 피조물일 뿐이며, 인간의 모습과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리스인들은 우주의 중 심에 신이 아니라 인간을 두었다는 얘기다.

그리스의 신화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는 불투 명하다. 신들은 너무도 인간적이며,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천상의 세계에서 ‘신들과 인간 의 아버지’로서 세계를 통치하는 제왕 제우스는 탁월한 통치술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바람둥이 의 대명사답게 화려한 여성 편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왕의 아내 헤라Hera는 바람난 남편을 쫓아 다니며 투기를 부리는 여염집 아낙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든 생명의 애욕愛慾을 주관’하는 아프로디 테Aphrodite와 인간의 증오와 파괴의 본능을 드러내 는 아레스Ares 등의 신들도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 신화 에는 신과 인간의 사랑을 대변해 주고 그 결실로 태어난 영웅들의 얘기도 실려 있다. 이와 같이 그 리스인들은 인간적인 모습의 신 앞에서 삶의 과정 상 벌어지는 욕망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 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탄생은 영웅들의 시대로 불리는 미케네 문명의 전성기, 즉 기원전 16~11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다가 기원전 11세기경에 이 르러 북방의 도리아Doria인이 남하하여 미케네 문 명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그리스의 암흑기를 거치 고 나서 기원전 8세기경에 구전으로 떠돌던 신화 가 최초로 문자로 기록되었다. 이 덕분에 호메로 스의 영웅 서사시 『일리아스Iliad』와 『오디세이아 Odyssey』가 탄생하였다.

그리스 신화는 문학적으로 채색되어 거듭나게 되 면서 구전신화의 지평이 넓혀지게 됐다. 이러한 작업이 활발했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 경이다.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로 알려진 아이스퀼로스 Aischylos, 소포클레스Sophokles, 유리피데스Euripides 와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가 대표 적이다. 그들은 구전된 신화를 작품의 소재로 삼 아 신과 인간의 문제에 관한 진지한 담론을 제기하 게 됐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는 헤로도토스 Herodotos, 투퀴디데스Thucydides 등의 역사가들의 저 술에서 인용되기도 하였고,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 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명제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폴리스polis에서 싹튼 민주주의
지리적으로 산이 많고 평야가 적은 특징을 갖고 있는 고대 그리스에는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나 평 지, 해안가 등지에 개별적인 씨족으로 구성된 촌 락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촌락 공동체를 책임지는 장은 산맥과 바다에 가로막혀 독자적인 자치체제 및 독립적인 경제체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리스에서 폴리스polis가 형성된 요인은 이러한 지리 적 조건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운명 공동체 집단의 특성을 갖 는 다양한 유형의 크고 작은 폴리스가 형성되었 다. 폴리스의 전형은 여러 촌락의 부족들이 모여 들어 도시국가의 체제를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폴리스의 중심이 되는 도시는 대체로 해안으로부 터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하였으며, 대부분 외부 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성벽을 갖 추고 있다. 도시국가의 체제를 갖춘 폴리스의 전 형은 아테나이Athenai를 들 수 있겠는데, 비록 제한 적이긴 하였지만 시민이 경작할 수 있는 농경지 도 있었으며, 도시 중심에는 원래의 폴리스였던 성 채城砦도 있었다. 그리고 중심에는 아크로폴리스 akropolis라는 도시의 수호신을 모신 신전과 그 주변 에는 아고라agora라고 하는 광장이 있었다. 아고 라는 시장의 기능을 하면서 정치적 토론의 장이었 고, 폴리스의 공공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사교의 장이기도 하였다.

누가 폴리스의 시민이 되는 것일까. 폴리스가 성 립될 당시 중심도시로 모여든 사람은 주로 귀족과 상인들 그리고 수공업자들이었다. 폴리스 내에는 수많은 노예, 자유인,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폴리 스를 만드는데 참여한 각 부족의 성원 내지 그 후 손들만이 폴리스의 완전한 시민이 되었다. 농민들 은 촌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으며, 귀족들은 그 근거지를 농촌에 그대로 두고서 도시국가에 머물 렀던 것이다. 그래서 도시국가 성립 이전에 있었던 공동체적인 성격은 폴리스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민공동체로 형성되 게 된 것이다.

폴리스의 시민공동체는 완전한 독립성과 주권을 가지면서 자유와 자치를 그 이상으로 삼았다. 자 유와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폴리스는 종교적이 며 경제적인 유대로 결합되어 있었고, 사회질서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규제되었다. 또한 시민은 도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모두 정치적인 업무와 군사 적인 업무에 종사하였다. 특히 귀족은 혈통과 가 계가 뛰어난 자들로서 신의 아들이나 영웅 또는 왕의 후예임을 자랑하는 부족들의 출신이다. 그들 은 평민보다 많은 토지와 가축을 소유하고 있어서 폴리스를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왜냐하면 폴리스를 방위하거나 식민지 개척에 나 설 때에는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전투를 위해서 는 많은 말과 중무장을 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 었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인 폴리스라 불리는 아테나이에는 시 민공동체의 체제를 기반으로 해서 시민전체의 정 치참여를 실현하는 민회民會가 결성되었다. 민회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되며, 민회는 명문 귀족 중에 서 집정관argon을 선출하였다. 집정관은 종교, 군 사, 민사를 책임지는 우두머리지만 실질적인 권한 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집정관의 임기가 끝나면 아 레이오파고스Areiopagos 회의의 의원이 되는데, 이 는 귀족지배의 핵심기관이 되었다.

민주주의Democracy는 어원으로 볼 때 그리스어의 합성어, ‘민중의 힘’(demos+kratia)을 뜻하는 말에서 기원한다. 아테나이 시대에 도시국가를 운영하는 정치가는 시민의 뜻을 반영하여 직접민주제로 선 출되었다. 정치지도자 및 관리의 선임 및 해임 방 법으로 직접선거가 실시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594년에는 하층민에게도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평민의 권리를 신장한 솔론Solon(기원 전 630~560)의 개혁이 있었고, 기원전 510년에는 아 테나이 시민이면 누구나 지위에 관계없이 정치적 권력을 공유하는 혁신이 공표됨으로써 아테나이 는 민주주의 국가의 표본이 된 셈이었다.

아테나이에 민주주의를 전성기로 이끈 위대한 정 치가는 바로 페리클레스Perikles(기원전 495~429)를 꼽 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테나이에서 인류역사 상 최초로 도편추방이라 불리는 패각투표가 실시 되었기 때문이다. 즉 아테나이 시민들은 독재자의 출현을 방지하고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매 년 패각투표를 실시하였는데, 참주僭主의 기미가 있는 자들을 도편에 적어서 투표하여 과반수를 넘 게 되면 폴리스에서 추방했다. 기원전 461년에 페 리클레스는 실제로 보수파 키몬을 도편추방에 걸 어 아테나이에서 내쫓았던 것이다.

민주주의 전성기에는 오래도록 골칫거리였던 아 테나이의 병폐, 즉 아테나이를 지배하던 귀족 세력 의 약화, 부채 때문에 노예가 된 자유민의 해방, 부 를 바탕으로 정치적 권력을 얻고자 했던 상인들의 위협 등이 해소되었다. 페리클레스는 대외적으로 는 페르시아Persia와의 전쟁(기원전 492~448)에서 천우 신조로 승리하자 재침공을 대비하여 주변 도시국 들과의 델로스Delos(기원전 478년) 동맹을 맺어 맹주로 서 활략하면서 아테나이 제국을 이끌어갔다. 이로 써 아테나이에는 전례 없는 ‘황금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아테나이의 이러한 민주정치는 다른 폴리스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경에 접어들면서 폴리스는 내부의 당파싸움, 끊임없는 분립 항쟁에 시달렸으 며, 28년이라는 장기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 쟁(431~404)에서 스파르타Sparta에 패하여 항복함으 로써 아테나이의 동맹국은 쇠퇴의 기로에 서게 됐 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랄까. 기원전 430에서 427 년 사이에 3번에 걸쳐 역병이 휩쓸어 아테나이 인 구가 1/3로 줄었고, 뒤이어 북쪽의 마케도니아 왕 국의 침입으로 아테나이의 폴리스와 민주정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됐던 것이다.


철인 왕을 꿈꾸었던 플라톤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에 아테네에서 태어난 명 문 귀족 출신이다. 그는 20세쯤에 학문의 순교자 인 소크라테스를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그러나 아테나이의 민주정치에 의한 스승의 비극적인 죽 음, 외모는 그렇지만 도덕적으로 고귀한 인품을 지 닌 스승, 탐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보이 는 그런 스승이 플라톤에게 엄청난 감명을 주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플라톤이 전반기에 쓴 대화 편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체계화되어 잘 전해 지고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20여편이 넘는데, 전기와 중기, 후기의 저술들로 구분된다. 전기와 중기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이끌어가 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화편의 내용이 어디까 지가 스승의 사상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주장인 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현대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서에 불 과하다.”고 말할 정도로 플라톤의 사상은 실로 방 대하다. 대화편들 중에서 『변명』, 『향연』, 『파이 돈』은 세계적인 명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대화편, 『파르메니데 스』편도 있다. 심후한 것으로 말하자면, 고도의 철 학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이데아론이 연상될 것이 다. 이데아들은 선 자체, 아름다움 자체, 건강 자체 등을 일컫는데 이것들은 영원하고 불변적인 하나 하나의 본질이요 실체이다. 이데아들은 비공간적, 무시간적인 것으로 오직 순수한 사유의 영혼만이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며, 심리적인 사고의 산물 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이다.

그는 철학과 수학 등의 이론학 외에도 정치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가장 훌륭한 국가에 관한 내용은 『국가』와 『법률』편에 길게 서술되어 있다. 그가 제시하는 가장 훌륭한 국가는 우주의 조화 원리에 기초한 이상적인 공동체, 즉 다양한 욕망 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소질들을 계발하여 실현하면서 다양한 계층들의 조화와 공존을 성립 시키는 것이다. 이질적이고 다양한 욕망구조의 실 현을 위해 국가는 통치자 계급, 수호자 계급, 생산 자 계급이라는 분업구조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최고로 지혜롭고 신적인 철학자가 추대되어 국가 의 백성들을 조화하여 다스리는 것이다. 즉 그는 철인이 왕이 되거나 왕이 철인이 되지 않고서는 백성들의 불행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 에 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꿈꾸었던 정의가 실현 된 나라, 이상국가의 모습이다. 플라톤의 국가론 은 후에 로마 제국의 정치인 키케로Cicero(기원전 106년 출생)의 『공화국』,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년 출 생)의 『신의 나라』를 저술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 치게 됐다.

고대 그리스에는 서양학문의 원조가 되는 많은 학 자들이 있다. 의료의 윤리적 지침서인 ‘히포크라 테스의 선서’에서 보듯이,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 라테스Hippocrates(기원전 460년 출생)가 있다. 플라톤의 수제자로서 고대 그리스의 학문을 종합하여 끝냈 다고 자부할 만큼 방대한 사상을 체계화한, 알렉 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의 스승이었던, 아 리스토텔레스Aristotle(기원전 384년 출생)가 있다. 그 외에 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수두룩하다.



-  출처 월간개벽 2013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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