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와 세계문화

천연자원과 자연환경의 천국 오스트레일리아

양우석 박사

2015.05.21 | 조회 3614

천연자원과 자연환경의 천국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은 선진국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다. 또한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5위이며, 군비 지출은 세계 13위이다. 인력개발 지수가 세계 2위이고, 삶의 질, 건강, 교육, 경제적 자유, 시민 자유와 정치적 권리 등과 같은 국가 성취도가 상위권에 속한다. 호주라고도 불리는 이 나라는 G20에 속하는 유엔 회원국, 영연방국, OECD,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기구, 태평양 도서국 포럼의 회원국이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믿음직한 우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백인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지 불과 200여 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다방면의 급성장을 이룩한 이 나라의 면모에 대해서 알아보자.

자연환경과 역사


 

자연환경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라는 나라 이름은 ‘Terra Australis Incognita’(남쪽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은 약 774만 ㎢에 달하는 면적을 가진 세계 6위의 대국이다. 이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 그리고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을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한자문화권에서는 ‘호주濠洲’로도 불리는 이 대륙은 남북 3,700㎞, 동서 4,000㎞, 해안길이 약 36,000㎞에 달하는데, 서부·중부·동부로 나뉜다. 남쪽에는 남극대륙, 북쪽에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파푸아뉴기니, 북동쪽에는 솔로몬제도와 바누아투, 뉴칼레도니아, 남동쪽에는 뉴질랜드가 위치한다. 서부의 서호주평원은 호주 면적의 60%를 차지한다. 이곳에 대규모 모래사막인 그레이트 빅토리아Great Victoria 사막, 그레이트 샌디Great Sandy 사막이 있다. 중앙에는 맥도넬MacDonnell 산맥이 있고, 태반이 평원으로서 기후는 건조하다. 동부 고지는 습곡산맥이 형성한 완만한 지형인데, 고지도 300~1,000m정도에 불과하다. 고지는 준평원이지만 동쪽 가장자리는 하천이 깊은 계곡을 이룬다.

동남부에 치우친 오스트레일리아 알프스Australian Alps 산맥은 주봉 코지어스코 산이 해발 2,234m로서 이 대륙에서 눈이 내리는 유일한 지역으로 수자원 개발이 이루어진다. 중앙 저지는 대륙을 남북으로 횡단하는 지역으로 에어 호수 주위에는 해수면 아래의 저지도 있다. 그리고 이 대륙에서 가장 큰 머리, 달링 강Darling River이 흐른다. 중앙저지의 중앙부는 달링강을 비롯해 대부분의 하천이 간헐천이다. 따라서 지하 깊숙이 삼투된 물을 찬정이라는 굴착 우물로 만들어 끌어올려 사용한다. 대체로 중서부는 사막이기 때문에 건조하다. 남회귀선이 국토의 중앙을 지나므로 국토의 40%가 열대권에 속하여 덥다. 동북연안은 무역풍이 불어 열대우림기후다. 동남부는 온대 해양성기후이므로 쾌적하다. 남부와 서남부지역은 겨울비가 내리는 지중해성기후다. 북부지방은 사바나기후이며, 내륙으로 감에 따라 스텝기후를 보여준다. 유카라와 아카시아가 대표적인 수종이며, 캥거루와 코알라, 오리너구리, 가시두더지, 원벳, 듀공, 포섬 등의 특이한 동물들이 서식한다. 선사시대부터 격리되어 있어서 동물계는 세계의 다른 동물과 다른 계통으로 진화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유럽인의 이주 이전
호주에는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이동해 온 것으로 추측되는 원주민인 애버리진Aborigines이 5~6만년 전부터 살기 시작했다. 약 6,000년 전 뉴기니아에 이르는 육로가 범람하기까지 뉴기니아와 북오스트레일리아 사이에는 문화적 교류가 있었다. 약 4,200년 전에는 인디아 본토인들의 이주와 이로 인한 애버리진들과의 혼혈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갑자기 식물 가공과 석기 제조가 행해졌고, 오스트레일리아 들개Dingo가 등장한다. 약 1,000년 전에는 토레스해협의 여러 섬들에 멜라네시아의 항해자들이 이주했으며, 이로 인해 그들과 북오스트레일리아인들 사이에 교류가 일어났다. 중국과 인도의 상인 및 인도네시아의 어부들은 아마도 수세기간 호주 해안을 상륙하거나 지나쳤을 것이다. 이들의 문화적 영향은 애버리진의 암각화나 나무껍질 그림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유럽인들에 의한 발견
호주 대륙이 발견되기 이전에 이미 유럽의 식자들은 ‘호주 대륙’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의 이론에 의하면 북극의 육지 무게에 해당하는 만큼의 육지가 남반구에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00년대 이전에는 호주 원주민과 인도네시아, 토레스해협 원주민들이 무역활동을 벌였으며, 16세기에는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특히 네덜란드의 항해가들이 호주의 해안에 도달하거나 육지에 상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06년에는 스페인인 토레스Luis Vaez de Torres가 토레스해협을 항해하였고, 같은 해에 네덜란드인인 윌리엄 얀츠W. Jansz가 케이프 요크Cape York 반도를 발견했다. 1616년에는 덕 하톡D. Hartog이 호주 서부 해안에서 섬을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덕 하톡이라 불렀다. 1619년에는 프리드릭 핫맨F. de Haoutman이 연구차 이 해안을 따라가다가 그의 이름을 딴 핫맨 아브롤오스를 발견했다. 하톡과 마찬가지로 후일 1696년 플라밍W. de Vlaminh도 호주 대륙의 최서단을 발견했다.

네덜란드의 항해가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발견을 결정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서부지역은 메마르고 생산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곳을 탐험해볼 흥미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1642년에야 비로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 지역에서 지리학적 관계를 탐험하기로 결정했다. 네덜란드인 타스만Abel Tasman은 동쪽을 향해 나아갔는데, 온전한 호주 대륙은 아니지만 타스마니엔 섬을 발견했다. 1688년에는 항해가 댐피어William Dampier가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호주 북부 해안 피쵸리 강가에 있는 킹 사운드 근처에 다다랐고, 1699년에는 호주 최서단에 도달했다.

식민지화와 계속적인 탐험
1770년 마침내 영국 해군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은 인데버Endeavour호를 타고 호주 동해안 보타니 만Botany Bay에 도달했고, 그곳을 측량하여 지도를 만든 다음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영국 식민지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라 선포했다.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에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증가하면서 사회불안이 야기되고 범죄가 늘어나 죄수들의 처리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영국내의 감옥들이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죄수들을 유배할 새로운 식민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식민 영토가 상실되었으므로 새로운 식민지의 개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779년 죠셉 뱅크스Joseph Banks는 호주의 뉴 사우스 웨일즈를 죄수들의 유배지로 적합한 곳이라 제안하였고, 이에 영국 정부는 호주를 죄수들을 유배하기 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787년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선장이 이끄는 해군함 11척을 현재 시드니의 보타니 만Botany Bay을 향해 출항시켰다. 필립 선장의 함선은 1,530명(이중 736명이 죄수)의 인원을 태우고 항해를 하여 1788년 1월 18일 보타니 만에 도착하였으나, 1월 26일에 정착여건이 보다 양호한 잭슨 항Port Jackson으로 옮겼다. 그들은 죄수 유배지로 건설한 이 새로운 정착지를 시드니Sydney라 불렀는데, 당시의 영국 내무부대신 로드 시드니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필립 선장이 시드니에 도착한 1788년 1월 26일 이 날은 호주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Australian Day)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다양하고 볼만한 경축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죄수의 호주 유배는 뉴 사우스 웨일즈에는 1840년까지, 서부 호주에는 1868년까지 계속되어 80여 년간 16만 명이 이주하였다.

새로운 식민지 건설
1792년 프랑스 탐험대가 호주 타스마니엔 섬에 도착했다. 이에 영국은 가능한 한 빨리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기로 했다. 1803년에 더번강변의 리스던 골짜기, 1804년에 호바트Hobart 타운, 그리고 테이머 강가에 죠지 타운을 건설했으며, 1813년에는 서부에 택지를 개발하기 위해 처음으로 블루 마운틴을 넘었다. 1823년 도입한 스페인산 메리노양merino羊으로 인해 양모산업 등 목축업이 발달하면서 경제적 가치가 인정됨에 따라, 영국은 죄수유배지를 식민지로 전환하고 육상 및 해상탐험 등으로 식민지역을 확장하여 6개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이는 현재의 호주 6개주로 발전하였다.

1824년에 브리스번Brisbane 강 어귀에 새로운 죄수 식민지가 건설되었고 1825년에는 당시의 판-디멘스-랜드Van Diemen's Land가 가장 자립적인 식민지가 되었으며,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에는 1826년 올버니Albany, 1829년 프리맨틀Fremantle이 식민지로 건설되었다. 또한 자유 주거지가 북부의 풍부한 목초지로 뻗어나가면서 식민지는 새로운 주거지를 보급했다. 1835년 타스마엔의 상인들은 애버리진들과 오늘날의 빅토리아 주 멜버른Melbourne 지역의 240,000헥타르의 땅을 취득하여 필립 항Port Phillip을 건설했다. 비록 이 거래가 불법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증가하는 인구 압력에 따른 식민지 확장을 가져왔고, 여기서 공식적으로 주거지를 위한 택지가 공급되었다.

1836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 건설된 아들레이드Adelaide는 죄수가 없는 최초의 자유 식민지로 계획되었다.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인 에드워드 웨이크필드Edward Gibbon Wakefield의 기획에 따른 체계적 식민지화의 일환으로 땅이 매도되고 그 대금은 자유로운 정착민들을 식민지로 받아들이는 데 사용되었다. 1840년대에는 죄수노동을 점차 자유이민 노동으로 대체하게 되면서 호주대륙이 시드니·멜버른 등 수개의 식민지역으로 분리되어 각 식민지 별로 독자적 행정 조직과 조세 체계를 보유하게 되었다. 1851년에는 새로운 식민지 빅토리아Victoria가 공식적으로 뉴 사우스 웨일즈로부터 분리되었으며, 퀸스랜드Queensland도 1859년 뉴 사우스 웨일즈에서 독립한 식민지가 되었다.

자본주의 발달과 국가를 향한 여정
1851년 호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골드러시gold rush의 물결이 일어났다. 호주 멜버른 북쪽 빅토리아라는 곳에서 금金이 발견되었는데, 이 금을 채광하려는 사람들이 대거 이곳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골드러시로 인한 경제호황으로 중국, 유럽, 미국 등지로부터 이민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1850년의 호주 인구가 40만명이었으나 10년 후엔 115만, 30년 후에는 223만명으로 증가하였다. 직접 금을 찾는 사람 이외에 기술자와 장사꾼도 모여들어 호주 대륙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자, 이 대륙 내에 성립되고 있던 6개 식민지간의 물자 교류 및 본국인 영국과의 교역도 왕성해졌다. 건설붐과 교통 및 체신, 각종 산업이 발달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가 정착하는 한편 노동운동도 발달하였다.

1854년 9월에 일어난 ‘유레카 혁명’ 사태는 호주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노동운동의 발전을 촉진한 광부들의 소요 사건이었다. 일명 ‘유레카 방책 봉기’라고도 불리우는 이 사건은 호주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무장 폭동으로 기록된 사건으로서, 금광 지역에 몰려든 채굴업자와 광부들에 대한 영국 정부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폭력적 징세절차 등 가혹한 압제 때문에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결국 1854년 12월 영국군과 지방 경찰력에 의해 의해 유혈진압이 되었으나, 식민지 전역에 미칠 파장과 봉기의 확산으로 인한 금광의 상실을 우려한 영국의 유화책으로 인해 자치와 민주적 개혁 등 요구 사항들이 대부분 수용되는 진전을 이루었다. 경제적 불만에 대한 광부들의 희생이 호주의 기반을 닦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자유롭게 호주로 들어왔고 고유한 국가를 향한 길이 열리게 되었다.

1823년 뉴사우스웨일즈가 제한된 입법권을 취득한 이래 식민지 각 지역은 서서히 자치체제를 확립하였다. 1855년과 1859년 사이에 영국은 호주 내 각 식민지의 헌법 및 자치정부를 승인함으로써 개별적인 식민지들은 책임있는 정부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써 대영제국으로부터 한층 더 독립성을 가지게 되었다. 런던은 우선 외교정책과 국방, 무역을 관장했고, 식민지에서는 개별국가들의 결합을 위한 기획이 시작되었다. 1887년 골드러쉬에 의한 노동력 수요 충족을 위해 저임금 중국인 노동자가 대량 유입됨으로써 임금 경쟁이 초래되었으며, 이때부터 백인 노동자들은 유색 인종에 대한 배척운동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백호주의白濠主義(White Australia Policy, 백인 우선주의 및 백인 사회의 동질성을 주장하는 정책)의 기원이다. 결국 1888년에 중국인 이민의 제한이, 1896년에는 모든 유색인종의 배척이 결정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1890년대에 접어들어 호주는 경제의 발달로 인하여 무역, 관세, 교통 및 체신의 통합운용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저임금 유색인종의 유입 저지, 국방문제 및 백색 단일인종의 공동운명체 의식 고조 등의 요인들로 인하여 연방제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891년에 연방헌법의 초안이 작성되어 각 지역간 논의를 거쳐 영국 의회에 제출되는 과정을 거친 끝에 서로 독립적이었던 식민지들은 1900년에 연방헌법을 제정하고 1901년 1월 1일에는 영국의 자치령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연방을 출범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연방은 기존의 정부관리, 대농장주 및 상업자본가 등의 지배계층과 유배죄수 및 하층민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계층의 구분이 매우 강한 정치풍토 속에서, 영국식 내각책임제에 미국식 연방제도를 혼합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연방헌법에 따라 호주 연방의 수도는 잠정적으로 멜버른Melbourne으로 정해졌으나 191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수도주(首都地域: Australia Capital Territory)가 결정되었고, 그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1913년에 캔버라Canberra로 명명하였다. 1922년에 최초의 연방의회가 열렸고, 1927년 7월에는 연방수도인 캔버라에 연방정부 및 의회의 이동을 완료하였으며, 1931년에는 영국으로부터 완전자치 승인을 얻게 되었다. 호주는 영국을 따라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새로운 안보·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영국 대신 미국과의 동맹관계로 대체하고 영국에 의존해 외교를 펼치던 이전과 달리 직접 국제외교에 뛰어드는 변화를 추구했다. 또한 비영국계 유럽인의 이주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강력한 이민 정책을 폈는데, 백인 이민정책이 주를 이루었지만 아시아나 다른 대륙에서도 이민이 이루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는 1967년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을 했으며, 1986년에는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 헌법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하워드Howard 총리 제2기 내각 출범 후인 1999년 11월, 호주에서는 영국과의 유대에서 벗어나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장된 ‘공화제’의 도입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는데 호주 국민 55%의 반대로 부결됨으로써, 호주는 아직까지 형식상 군주국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호주는 시드니올림픽(2000)을 개최하기도 하였지만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독립과 불법 이민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국내에는 토착 원주민의 토지소유 문제 등이 불씨로 남아 있다.

정치 및 행정


정치 체제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은 영국여왕(현재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을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로서, 정치제도는 미국의 연방제도와 영국식 의회주권에 입각한 내각책임제를 혼합한 형태이다. 호주는 1901년 6개 영국 식민지(현재 주)가 합의하여 창설한 연방제 국가로서, 권력은 연방정부와 주정부(6개 주 및 2개 자치지구)에 분산되어 있다. 연방정부는 헌법에 열거된 권한만을 보유하고 잔여권한residual power은 주정부에 귀속되는데, 조세나 경쟁정책, 노동법 등 연방과 주정부에 권한이 중첩되는 분야의 경우에 변화나 개혁을 위해서는 연방과 주정부간에 협상과 타협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와 주정부간 권력 분산내용은 주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호주의 국가원수는 형식상 영국여왕(Queen of Australia)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방총독이 여왕을 대신하여 국가원수 기능을 수행한다. 최근에는 외교문서에 국가원수로서 총독을 명기하게 되어 의전상으로도 총독이 국가원수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등 호주의 독립성을 보다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방총독은 외국 국가원수와 대사 접견, 내각선서, 의회개원 등의 의례적 역할 외에, 내각의 권고에 따라 의회의 소집, 정회, 해산, 법률안 동의 및 거부, 각료임명, 법관임명, 사면 등의 권한을 행사하며, 국군 총사령관으로 국군통수권을 보유한다.

총독은 총리의 제청에 의해 여왕이 임명하며, 모든 국가행위는 헌법 기관인 연방추밀원Federal Executive Council의 자문(실질적으로는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의 결정)을 받아 행사한다. 총독은 일반적으로는 내각의 결정에 따라 의례적이고 공식적 역할만을 하고 있으나, 헌법규정에 의해 때로는 강력한 권한 행사가 가능하다. 현재 호주연방의 총독은 최초의 여성 총독이었던 전임 쿠엔틴 브라이스Quentin Bryce가 퇴임하고, 동티모르 국제평화유지군 사령관직을 수행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피터 코스그로브Peter Cosgrove가 2014년 3월 28일자로 임기 5년의 제26대 호주 총독에 취임하였다.

행정부
호주는 성문헌법을 채택하고 있으나, 미국과 달리 행정부의 권한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행정부의 권한은 의회의 신임confidence, 부처 운영에 대한 장관의 자율성과 책임성ministerial responsibility, 내각의 연대책임cabinet responsibility이라는 3가지 관습에 의해 결정된다. 행정부의 수반은 하원의 다수당 당수가 되는데, 동 수반은 의회에서의 다수당 지위(특히 상원까지 장악한 경우)를 이용, 3가지 관습에 대한 해석을 변경함으로써 막강한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호주의 정당은 1909년 노동당, 1919년 국민당, 1944년 자유당, 1977년 민주당, 1992년 녹색당이 차례로 창당되었고, 진보를 대변하는 노동당과 보수정당인 자유당이 교대로 집권하면서 전형적인 양당 정치체제를 정착시켰다. 1983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래 1996년까지 노동당이 4회 연속으로 13년간 집권하다가, 1996년 총선에서 자유당-국민당 연합이 승리하면서 2007년까지 존 윈스턴 하워드John Winston Howard 총리가 이끄는 보수 연립 정권이 4회 연속으로 집권하였다. 2007년에는 다시 노동당이 집권하여 2013까지 6년을 이어갔다. 2007년 노동당 정권 출범시에는 케빈 러드Kevin Rudd가 총리를 맡았으나 2011년 노동당 리더십 투표에서 줄리아 길러드Julia Gillard가 승리하면서 노동당 당수와 총리직을 수행하였고, 2013년 노동당 2차 리더십 투표에서 케빈 러드가 다시 승리하면서 노동당 당수와 총리직에 재취임하였다. 하지만 얼마 후 이어진 2013년 9월 7일 총선에서 자유당-국민당 연합이 승리해 연정을 대표하는 토니 애버트Tony Abbott가 제28대 연방 총리에 취임하여 현재 호주 정국을 이끌고 있다.

연방의회(입법부)
의회Parliament는 호주 연방정부 시스템의 핵심으로, 상·하 양원제를 택하고 있으며, 하원과 상원에 동등한 권한을 배분하고 있다. 하원은 영국의 경우처럼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정부를 구성하고, 상원은 미국과 같이 각종 법률안(예산안 포함)에 대한 권고와 동의(advice and consent)의 권한을 보유한다. 호주에서 권력구조의 변화는 주로 연방-주 사이에 권한이양 차원에서 다수 시도되었으나, 경미한 경우 외에는 대부분 국민투표에서 실패로 끝났다. 연방의 6개 주와 2개 자치구는 각기 상하 양원을 가지며 연방주의 지방정부 지사는 수석장관으로 불린다. 연방의 주는 교육, 건강, 법률, 경찰, 교통에 관한 배타적 법제정권을 가진다.

연방 상원은 상위 입법 기관으로서 연방을 구성한 각 주의 이익을 동등하게 대변한다는 원칙에 따라 인구수에 관계없이 6개 주에서 각 12명씩, 연방직할 2개 자치구(캔버라 수도권인 ACT와 Northern Territory)에서는 각 2명씩 선출되어 총 76명으로 구성된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3년마다 정원의 절반이 선거에 의해 새로 선출되며, 2개 자치 지구 상원의원 임기는 3년이다. 상원 의원 선거는 각 주의 선거구에서 경쟁하는 대선거구제와 비례투표제도에 따라 실시되므로 군소 정당의 의원 진출이 다소간 용이할 수 있는데, 이는 시대적, 지역적 여론의 흐름을 보다 많이 반영할 수 있고 주요 정당간 세력균형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방 하원은 하위 입법기관이지만 상원보다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다수당 지도자인 연방 총리가 실질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기 때문이다. 연방 하원은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 내각과 제1야당 당수를 중심으로 하는 음영내각(Shadow Cabinet)간의 정책대결 토론 형식으로 운영된다. 연방 하원은 인구비례에 의해 설정된 선거구에서 선출되는 150명(인구 증감에 따라 조정가능)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3년이다. 하원 의원 선거는 주요 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와 선호투표 제도Preferential Vote(투표자들이 각 후보자 모두에 대해 우선 순위를 기재하는 제도)로 선출되며, 이에 따라 의회에서 다수당이 분명하게 형성되고 정부 구성이 용이한 장점이 있지만 군소정당들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사법부
연방차원의 사법부는 대법원High Court, 연방법원Federal Court, 가정법원Family Court으로 구성되며, 각 주는 통상 주 최고법원Supreme Court, 중급법원Intermediate Court, 즉결재판법원Court of Summary Jurisdiction 및 소액청구법원Small Claims Court으로 구성된 독립된 사법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밖에 연방법과 관련 행정 처분에 대한 소송을 관할하는 행정심판소Administrative Appeals Tribunal와 원주민 소유권법에 따라 원주민 소유권과 관련된 소송을 전담 처리하는 원주민소유권재판소National Native Title Tribunal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구역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방 행정구역은 뉴사우스웨일스 주(NSW), 빅토리아 주(VIC), 퀸즐랜드 주(QLD),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SA),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WA), 태즈메이니아 주(TAS) 등 6개 주와 북부자치주(NT),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특별자치주(ACT) 등 2개 자치주, 그리고 722개의 지방자치정부로 구성되는 연방정부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경제


호주에서 천연자원은 육류와 양모생산보다 더욱 중요한 분야이다. 금광의 발견은 호주 경제 발전의 전기가 되었으며 세계 제3위의 산출량을 자랑하는 납과 아연, 철, 보크사이트, 석탄, 갈탄 등도 산출된다. 2013년에 호주 중부지역인 아르카링카 베이즌에서 약 2,330억 배럴의 유전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다음으로 큰 규모다. 아직 수익성이 있는 석유가 채굴될지는 알 수 없지만 원유 추출에 성공한다면 이 나라 전체 사용량을 넘어서 수출까지 할 수도 있는 많은 양이다. 이 유전은 고대에 형성되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를 함유한 케로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축업은 호주 중심 산업의 하나이다. 양羊은 식민 초기부터 도입된 메리노종을 중심으로 북부의 열대지역과 중앙의 건조대를 제외하고는 널리 방목되고 있으며, 양모 생산량은 세계 생산량의 3분의 1을 넘는 세계 최대의 생산국이다. 소는 양보다 고온인 북부나 내륙에서도 방목되며, 연안의 다습지역에서도 행해진다. 젖소는 동남연안지역을 중심으로 인구밀집지역과 관련지어 분포하고 있다. 목축은 방목을 위한 넓은 국토와 대찬정분지의 지하수 개발, 냉동선의 발명, 양모 소비의 증가 등을 조건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토의 66%가 농업과 목축에 적합한 토지인데, 그 가운데 90%가 방목지이다. 이 나라의 목축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농업도 밀을 중심으로 매우 왕성하다. 식민지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시작된 밀 경작은 오늘날 세계 굴지의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총생산량은 2011년 기준 27,410,100톤으로 세계 생산량의 3.89%, 세계 6위를 기록하고 있다. 밀의 경작지는 동남부와 동부 고지의 내륙쪽과 내륙 남서부에 주로 분포한다.

공업은 대체로 침체되어 있었다. 1차 상품을 수출해서 필요한 상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식민지에 공통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무렵부터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더욱 촉진되어 겉보기와는 달리 공업생산량은 제1차산업의 생산량을 넘어서고 있다. 철강산업과 함께 급속히 발전한 자동차산업 등 중공업의 발전도 괄목할 만하다.

수출의 7할은 20세기 초까지 주로 영국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영국 의존도가 감소하여 1970년대에는 4%까지 낮아졌다. 수입도 영국의 비율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던 것이 1970년대에는 23%로 낮아졌고, 최근에는 3% 이하로 크게 개선되었다. 그 대신 미국, 일본, 독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증가하였고 유럽연합과 캐나다로부터의 수입도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 그 이후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교역 비중이 급증하여 2009년에는 중국, 일본, 한국이 가장 중요한 수출 상대국으로 부상하였고,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도 빠르게 증가하여 이 나라 최대의 교역국이 되었다.

관광업은 이 나라 수출량의 8%를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이래 관광객은 매년 증가하여 2003년 호주를 찾은 관광객은 435만 명, 2012년에는 610만 명을 기록했다. 호주 관광청은 2020년까지 이 숫자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관광객들은 주로 네덜란드, 중국, 영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한국, 홍콩, 인도, 독일 등지로부터 온다. 호주에서는 약 51만명 이상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이 호주에 와서 쓰고 가는 돈은 1년에 약 350억 호주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와 문화


사회적 특징
호주를 처음 개척한 건 영국인들이지만, 오늘날의 호주는 미국이나 캐나다보다도 이민자 비율이 높을 정도로 여러 인종들이 섞여 사는 다문화 국가이다. 백인과 비非백인을 포함해서 이민 1,2세대가 무려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가 호주다. 본래 호주 대륙의 원주민은 아직도 수렵시대의 생활을 영위하고 그 인구도 크게 감소하였으므로, 오늘날 호주 사회는 현실적으로 거의 유럽계 백인의 천하라 해도 좋을 정도다. 호주는 식민지 개척 이래 지속적으로 이민에 의한 인구 증가를 꾀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자원개발과 경제성장을 위한 적극적인 이민 수용 정책을 편 결과 주로 이탈리아, 그리스, 네덜란드계의 이민자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1850년대의 골드러시 때 중국인 광부들과의 사이에 일어난 문제의 해결책으로 생겨난 백호주의白濠主義(White Australia Policy) 정책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하였으나, 1973년 이 정책이 공식 폐지되었고 1975년엔 인종차별금지법Racial Discrimination Act이 제정되었다. 지금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히려 국민들 대다수가 다문화 정책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며 여러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호주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고령자, 장애인, 실업자, 병약자, 무주택자에 대한 지원이 눈길을 끈다. 또 오전과 오후에 차를 마시는 시간이 있으며, 크리켓, 론 볼링, 럭비 등의 스포츠가 활발하다. 골프나 경마, 수상스포츠, 캠핑을 즐기고 일요일 오후에는 ‘아르보’(오후라는 뜻)라는 정원 맥주 파티에서 서로 어울린다. 또 예고 없이 친구나 친척집을 방문하여 잡담하는 관습이 있고, 호주식 바비큐를 즐긴다. 그리고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노동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일년에 4~5주의 휴가와 연중 다수의 공휴일이 지정되어 있다.

호주의 문화
초기에 호주 대륙의 문화는 식민세력에 의해서 각인되었지만, 고유한 국가적 동질성이 생겨나면서 호주의 국가 문화도 생겨났다. 오늘날 호주의 문화는 다양한 집단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원주민인 애버리진의 토착 문화와 혼합되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즉, 현대 호주 문화의 정체성은 원주민 애버리진의 유산, 활기찬 문화의 융합, 혁신적인 사고와 활발한 예술 현장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모방예술의 가장 오랜 형태는 기원전 3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애버리진의 석굴묘다. 자연 안료로 나무껍질에 그린 그림에서 아크릴로 화포 위에 그리는 그림으로 바뀌면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1960년대 이래 애버리진 예술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호주에 거주하는 최초 유럽인들의 회화는 동물이나 애버리진을 모티브로 삼고 있으나 톤과 색조에 있어서 유럽의 회화를 범례로 하고 있다. 멜버른에 있는 하이델베르크학파에 의한 프랑스 인상주의에 동화됨으로써 19세기 후반 경에 호주 예술은 처음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오늘날 호주 예술가들은 점차 아시아 나라들의 예술 형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자립적인 호주 문학의 발전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다. 헨리 로슨이나 페터슨 같은 초기 작가들의 시詩는 ‘부시 발라드(bush ballad)’라 불리면서 호주 숲 속 농촌지역의 다채롭고 모험적인 생활을 다루었으며, 그 이후에도 초점은 호주 대륙과 그 주민들에 맞추어졌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많은 호주 작가들은 농촌 생활과 아울러 도시 생활에 관해서도 작품을 썼는데, 소설가 패트릭 화이트Patrick Victor Martindale White(1912~1990)는 ‘폭풍의 눈 The Eye of the Storm’이라는 소설로 1973년에 호주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세기 호주의 가장 뛰어난 작가로 칭송을 받고 있다.

호주는 영화 산업을 선도하고 발전시킨 역사를 갖고 있다. 1896년 호주 시드니에서 최초의 영화관이 문을 열었으며, 1906년 호주의 구세군이 상영한 ‘십자가의 병사들’은 세계에서 최초의 진정한 영화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호주의 영화 산업은 20세기 초에 붐을 이루었다가 1930년대 말 이후 미국과 영국의 영화에 밀려 사실상 소멸했으나, 1969년에 호주 정부가 영화 산업의 촉진 정책을 강화하면서 부활했다. 이후 호주적인 테마를 취한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1975년 피터 와이어 작 ‘성 발렌틴제의 소풍’이다. 1998년 시드니에는 대형 영화촬영장인 폭스 스튜디오Fox Studios가 문을 열었으며, 이후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의 제작사가 호주로 옮겨졌다. 오늘날 호주는 1년에 20편 이상의 장편영화를 제작하며 갈수록 많은 작품을 해외에 배급하고 있다.

호주는 또한 풍부한 공연예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 면모를 갖춘 클래식 음악 연주 분야만 해도 6개의 전문 심포니 오케스트라, 2개의 극장용 오케스트라(오페라와 발레용), 2개의 전문 챔버 오케스트라, 수많은 챔버 뮤직 앙상블이 존재하며 이들 대부분은 국제 투어를 하고 있다.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The Sydney Opera House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이자 공연장으로 매년 약 300여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고, 멜버른에 있는 국립 발레 앙상블은 1961년 세워진 호주 발레단으로 매년 185명의 고전 무용수와 현대 무용수들이 호주 각지를 돌며 순회 연주를 하고 있다.

스포츠는 호주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며, 야외 활동을 뒷받침하는 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다. 120개의 국립 스포츠 단체와 수천 개의 지역 및 주 체육 조직이 있는 호주에서는 약 650만 명의 국민들이 스포츠 단체에 등록되어 있고, 15세 이상의 호주인 가운데 23.5%가 규칙적으로 조직적인 체육 활동을 즐긴다. 호주인들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스포츠인 럭비와 크리켓, 그리고 럭비와 축구의 중간 형태인 ‘호주축구(Australian rules football)’에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호주는 1956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으며,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호주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는 매년 1월 멜버른에서 개최되는 4대 그랜드슬램 대회 중 하나로 호주에서 가장 외국인들이 많이 참관하는 스포츠 행사이기도 하다.

현재 호주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외국에서 출생한 사람들이며 40% 이상이 한 가지 이상의 문화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언어도 226개가 사용 중이며 영어 다음으로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광동어 그리고 아랍어가 많이 사용된다. 이처럼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은 음식에도 반영되어 호주에서 전세계 음식 대부분을 맛볼 수 있으며 예술적으로 융합된 퓨전 음식도 상당히 많다. 호주의 요리는 전통적으로 영국의 요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점차 비영국적인 주민이 이민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요리가 발달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요리, 그리고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요리가 많이 퍼지고 있다.

종교적 성향
호주는 한마디로 국교가 없는 나라다.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이전에 토착민들의 애니미즘적 신앙은 천년간 지속되었다. 본토의 애버리진의 영성은 꿈꾸는 시간과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땅에 대한 귀속감을 매우 강조한다. 이런 내용의 설화는 애버리진의 법과 관습에 남아 있다. 그들의 예술, 설화, 춤은 이러한 영성적인 전통을 묘사하고 있다. 호주와 뉴기니아 사이의 섬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영성과 관습들은 그들의 멜라네시아적 유래와 섬에 대한 귀속성을 말해준다. 1996년의 호주 센서스에 의하면, 전통적인 애버리진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은 7000명 이상이다. 영국의 함선이 호주에 도착한 1788년 이래, 기독교는 호주의 주요 종교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공식 휴일이 되었고, 호주 도시들의 스카이라인은 교회의 첨탑이 장식하게 되었다. 교회는 교육, 건강, 복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있고, 가톨릭 교육 시스템은 가장 큰 비정규 교육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호주인의 종교적 성향을 살펴보면,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 중 67%를 차지하며 무종교가 26%, 기타(불교ㆍ이슬람교ㆍ힌두교ㆍ유대교 등)가 7% 정도인데, 무종교인의 수치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비영리적인 한 독일 싱크 탱크인 베르텔스만Bertelsmann의 보고에 의하면, “호주는 서방 세계 가운데 종교심이 가장 박약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며, 거의 4인의 호주인 가운데 3인은 종교를 거의 믿지 않거나 종교가 삶에서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답한다.”고 한다. 2009년 1718 명의 호주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호주에서 매달 종교 봉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1993년 23%에서 2009년 16%로 감소했으며, 1993년 15~29세 응답자의 60%가 기독교인과 일치했으나 2009년에는 33%로 대폭 감소했다. 호주인이 급격하게 종교의 영향을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관계


한국과 호주의 교류는 1884년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양국의 관계는 호주가 1947년부터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6·25때 참전함으로써 매우 긴밀해졌다. 1961년 양국의 수교 이래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범세계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정치, 외교 분야에서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긴밀한 실질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양국은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양국의 번영에 직결되어 있다는 기본 인식 아래 역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미국의 지역적 역할을 지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공히 통상국가이면서 상호 보완적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태지역의 중견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제반 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는 유사성이 강하다. 양국간의 상호 보완성과 유사성을 근간으로 양자관계 뿐만 아니라 지역 및 세계적 차원에서 안보·군축·경제·통상분야의 협력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주는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와 남북 대화 촉진, 1953년의 휴전협정을 대신할 영구적 평화 협정 체결을 위한 강대국들의 움직임에 지지를 보내왔다. 이를 위해 2000년 5월에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에 2,190만 호주 달러를 지원했다. 또 기술 원조와 인도주의 차원에서 6,000만 호주 달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2년 5월 호주 수도인 캔버라에 북한 대사관이 개설됐지만, 2008년 1월 재정난을 이유로 북한은 캔버라 주재 대사관을 폐쇄했다. 그러다가 2012년 말 호주 외무부의 제안으로 대사관 재개설에 대한 협의가 진행이 되었으나, 북한이 3차 핵실험(2013.2.12)을 강행하자 이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호주 정부는 북한 대사관 재개설 승인 입장을 철회하기도 했다.

한국과 호주 양국은 인적 교류 촉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교육·문화·관광·미디어 교류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호주에는 약 15만 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호주인 수가 증가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인 호주 방문자는 약 19만 명, 호주인 한국 방문자는 약 12만 명에 달하고 있다.


 



 

호주 전통 종교의 숭배 대상 추룽가Tjurunga

사람과 땅의 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호주 원주민 문화는 영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들은 땅을 자신들의 어머니라고 하며, 따라서 그들의 소유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보통 호주의 전통 종교에서 신화적 존재이자 그 숭배 대상을 추룽가Tjurunga 혹은 추링가Churinga라고 부른다. 대개 나무나 돌로 만들며, 그것을 그러한 존재의 상징 혹은 현시顯示로 삼는다. 아란다족의 용어인 추룽가는 특정 의식儀式, 돌과 나무로 만든 물건, 끈을 묶어 소리를 내는 판자, 땅에 그린 그림, 고분, 의식용 장대와 문장紋章, 머리의 쓰개, 신성한 노래 등 전통적으로 성화하거나 금기시하는 비밀스럽고 신성한 사물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납작한 타원형으로 다듬은 뒤 신성한 무늬를 새긴 돌이나 신화적인 의미를 가지는 복잡한 형태의 무늬를 새긴 나무판자를 말한다.

대부분의 추룽가는 남자들의 비밀스럽고 신성한 의식에 사용되었다. 여자들의 의식에서도 작은 물건들이 사용되었으며, 더욱 작은 물건은 남자들의 사랑의 주술에 사용되었다. 모든 사람은 추룽가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다. 입문식 때 청년은 자기가 사는 지방의 의식과 추룽가에게 소개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추룽가와 함께 지내는 법을 전수받는다. 죽을 때 추룽가는 시체와 함께 묻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이 추룽가를 다시 찾는다고 한다.

추룽가는 본질적으로 그들과 연관된 지역의 전통적인 집단 구성원들의 불멸성을 나타낸다. 그들은 모두 생명의 연속성과 영혼의 불멸을 주장한다. 그들은 사랑과 신화적인 시간, 사람과 위대한 존재들, 일상의 물질적인 면과 인간의 영적 유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류의 상징이자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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